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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의 '사랑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청춘 회고, 가사들, 여운)

by oasis 2026. 4. 12.

검정치마의 정규 3집 TEEN TROUBLES

검정치마의 세 번째 사랑 연작 Teen Troubles는 1999년, 조휴일이 열일곱이던 여름으로 돌아간다. 앨범 첫 곡의 내레이션이 '귀가 찢어질 듯 매미가 울던 1999년의 여름 밤'으로 시작하는 순간, 저는 그 문장 하나에서 이미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설명이 없었는데도,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이 앨범을 두고 "검정치마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예전만 못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어느 쪽도 아닌, 좀 더 복잡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사운드는 분명히 좋았고, 동시에 가사의 어느 지점에서는 멈칫했습니다. 그 멈칫함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사랑 3부작의 종착점, 청춘 회고

검정치마는 스스로 '사랑 3부작'이라 이름 붙인 세 장의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TEAM BABY가 보편적인 사랑을, THIRSTY가 뒤틀리고 욕망에 가득 찬 사랑을 다뤘다면, Teen Troubles는 그 끝에 놓인 작품입니다. 조휴일은 이번에 '나'로 돌아갑니다. 지금의 나가 아니라, 1999년에 열일곱이었던 나. 그 시절의 감각, 냄새, 온도로 돌아갑니다.

저는 처음 검정치마를 들었을 때의 기억이 또렷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흐릿합니다. 정확히 언제, 어떤 계기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날의 공기만큼은 남아 있습니다. 나른하고 무료한 하루에 음악이 얹혔던 그 감각. Teen Troubles를 들으면서 그 기억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이 앨범은 청자의 '그때'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앨범의 시작부는 생기로 가득합니다. 불세례는 록의 질감으로 청춘이 식어가는 순간을 그리고, 어린양은 색소폰 선율로 감정을 달궈냅니다. Sunday girl은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검정치마 초기 음반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고, 매미들은 '밝고 짧게 타올라라'라는 외침을 주문처럼 반복하며 청춘의 어리석고 뜨거운 감각을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이 앨범을 두고 어떤 분들은 '검정치마스럽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반대로 읽었습니다. THIRSTY에서 강하게 묻어 있던 상상과 허구의 서사에서 벗어나, 이번 앨범은 훨씬 순도 높게 '나'를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조휴일의 첫 앨범 201부터 그의 음악은 늘 화자인 나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Teen Troubles는 오히려 가장 검정치마다운 앨범에 가깝습니다.

Garden state dreamers에서 '열일곱 내 생일을 막 지나서 나쁜 걸 좋아하게 됐을 때'라는 고백은 일면 과감하고 섹슈얼하지만, 그것이 당혹스럽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 앨범이 청자에게 건네는 감각이 그만큼 솔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솔직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한 가지 지점에서는 그 솔직함이 스스로 발목을 잡는다고 느꼈습니다.

가사들

검정치마의 음악을 오래 들어온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이 문제를 인식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조휴일의 스타일이니까'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Teen Troubles를 들으면서 그냥 넘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강아지에서 여성을 '태워주는 차'에 비유하거나, 음악하는 여자에서 '음악 하는 여자는 징그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빨간 나를에서 '천박한 계집아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 저는 솔직히 음악 감상이 잠깐 끊겼습니다. 이 표현들이 이번 앨범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커리어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더 문제입니다.

여기서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John fry에서 '통통한 손이 내 바지로 들어와 / 근데 니 생각이 났어'라고 야릇하게 사랑을 노래하는 것, 혹은 Garden state dreamers에서 십대의 욕망을 과감하게 꺼내는 것은 성인 화자의 솔직한 고백으로 읽힙니다. 이건 과감한 서사입니다. 그런데 '징그러', '천박한 계집아이' 같은 표현은 그 결이 다릅니다. 화자의 욕망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게 그 시절 10대 남자애가 가진 미성숙한 시각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작품 안에서 그 시선에 대한 거리두기나 성찰이 없다면, 결국 그 표현이 그대로 음악의 일부로 남는다는 점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달아오른 화자를 '개', '강아지'에 빗대는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비유가 반복되는 패턴 안에서 여성이 늘 수동적인 객체로만 등장한다는 점이 누적되어 답답함을 만들어냅니다. 사랑의 묘사가 늘 같은 방식, 같은 언어로 그려질 때, 음악은 조금씩 얇아지고 묽어집니다. 저는 그 얇아짐이 이번 앨범에서도 결국 한계로 작동한다고 느꼈습니다.

이 문제를 지나치게 예민하게 보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 반응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좋은 음악이 더 좋은 음악이 될 수 있었던 지점을 아쉬워하는 것과 예민함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운드와 여운, 검정치마가 남기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의 사운드는 강력합니다. 저는 검정치마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건 왜 이렇게 편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편안함의 정체를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결국 이 음악이 감정을 크게 만들지 않는다는 데서 온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대학교 시절, 기숙사 방에서 불을 끄고 이어폰을 끼고 International Love Song을 들었던 날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천장을 보면서 음악만 듣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노래는 감정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외롭고, 동시에 편안합니다. 이 두 가지 감정이 같은 시간 안에 공존한다는 게 검정치마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Teen Troubles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후반부의 Ling ling과 Our summer는 17살 조휴일의 개인적인 회고에서 출발해, 듣는 사람 각자의 청춘을 불러냅니다. 저도 그 노래들을 들으면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던 날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냥 버스 안에서, 혹은 걸어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좀 슬펐던 날들.

일본 도쿄에서 혼자 숙소로 돌아오던 밤에도 검정치마를 들으며 걸었습니다. 편의점 불빛,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저. 그 장면이 영화처럼 느껴졌는데, 이건 거창한 서사가 만들어주는 영화적 감각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작고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장면이었는데, 음악이 그것을 기억할 가치가 있는 순간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 음악을 더 자주 찾게 됐습니다. 피곤할 때는 감정을 크게 건드리는 음악이 부담스럽습니다. 검정치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틀어놓으면, 제 상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옆에 있어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다 이 음악을 틀면 분위기가 확 바뀌지 않습니다. 대신 서서히 조용해집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고, 누군가는 생각에 잠기고, 누군가는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그게 이상하게 편합니다. 이 음악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상태를 만들어버립니다.

결국 Teen Troubles는 좋은 앨범이면서도, 더 좋을 수 있었던 앨범입니다. 사운드의 구성력, 선율의 흡입력, 개인 서사의 과감함은 검정치마의 강점을 충분히 담아냅니다. 그러면서도 이성 간의 사랑을 묘사하는 방식이 반복적인 클리셰와 여성을 바라보는 특정 시선 안에서 맴도는 한, 이 음악이 스스로 설정한 천장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그 한계를 말하는 것은 동시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검정치마를 들을 것이고, 아무 일도 없던 날들의 배경으로 이 음악을 켜놓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음 작업에서는 조휴일이 그 얇아진 부분을 스스로 건드려주기를 기대합니다. 그 기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아직도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참고: https://ch.yes24.com/Article/Details/5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