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축제 때 운동장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Heat Waves'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해 질 무렵 주변은 웃음소리로 가득했지만, 저는 막 헤어진 직후라 묘하게 쓸쓸했습니다. 밝은 멜로디인데 왠지 혼자인 느낌을 주는 그 노래가 군중 속 고독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영국 밴드로 알려진 글래스 애니멀스는 약 2년 만에 역주행에 성공하며 전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스포츠 게임 FIFA 21 주제가로 삽입되고 틱톡에서 30억 개 이상의 영상이 공유되며 빌보드 차트 59주 만에 1위에 오른 'Heat Waves'는 단순한 히트곡이 아닌 시대의 정서를 담은 곡이었습니다. 저는 이 밴드가 몽환적 사운드와 그루브를 절묘하게 결합해 디지털 시대의 파편화된 자아를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소꿉친구 4명이 만든 글래스 애니멀스의 시작
글래스 애니멀스의 프론트맨 데이브 베일리는 미국에서 태어나 13세에 영국 옥스퍼드로 이주했습니다. 넵튠즈나 닥터 드레 같은 프로듀서형 아티스트의 음악에 빠진 그는 17세부터 벼룩시장에서 산 중고 기타로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런던의 의과대학에서 신경 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새벽 시간을 활용해 노트북으로 비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밴드는 음악적 비전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 결성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글래스 애니멀스는 청소년기부터 친구로 지내던 네 명이 2010년 무렵 자연스럽게 결성한 케이스입니다. 리더 겸 보컬 데이브 베일리, 드럼의 조시 워드, 기타의 드루 맥팔레인, 베이스의 에드먼드 어빙이 그 주인공입니다. 밴드명은 사전에서 무작위로 찾은 단어를 조합했다는데, 저는 이런 우연성이 오히려 이들의 음악적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마이크에 양말을 덮어 팝 필터 대신 사용했고, 데이브는 데모를 멤버들에게 들려줄 때 너무 떨려서 이불을 덮고 불렀다고 합니다. 옥스퍼드의 라이브 펍과 지역 라디오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은 2012년 첫 EP 앨범 'Leaflings'를 발매했습니다. 전형적인 밴드 음악보다는 신시사이저와 다양한 악기를 활용한 차별화된 사운드를 선보이며 아델이나 브루노 마스를 섭외한 폴 엑스의 눈에 띄었습니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스토리텔링이 가득한 가사, 독특한 분위기를 내세우며 2013년부터 여러 싱글과 EP를 발표하며 점차 이름을 알렸습니다.
1집 'ZABA'는 데이브 베일리가 전곡을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는데, 영감을 받은 소설의 정글 콘셉트에 맞춰 주변 들판의 소리나 동물 소리를 활용했습니다. 특히 나른하고 몽환적인 'Gooey'는 미국에서 1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고, 앨범은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차트에 진입하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후 유럽, 미국, 호주 등 140회 이상의 단독 투어를 진행하며 글로벌 팬층을 확보했습니다.
옴니버스 앨범 'How To Be A Human Being'과 위기
투어 도중 낯선 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한 데이브는 본인의 전공인 심리학과 드러머 조의 전공인 문학을 활용해 경험이라는 주제의 미니 옴니버스 앨범을 기획했습니다. 2016년 발표된 2집 'How To Be A Human Being'은 각 곡마다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에도 곡마다 다른 11명의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밴드 앨범은 통일된 무드와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앨범은 각 트랙마다 완전히 다른 캐릭터와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우연히 만난 노숙자가 한 말을 가사로 이어나간 곡도 있고, 마약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는 'Agnes', 오랜 스케이트 생활로 살이 찐 남자가 자신감을 되찾는다는 내용의 나이키 CF까지 신선한 소재들이 가득했습니다. 쓰레기통을 드럼으로 활용하고 TV 프로그램 배경 음악을 샘플링하며 R&B와 힙합 요소를 차용한 사운드는 1집의 몽환적 분위기와 달리 통통 튀고 활기찼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22위, 영국 오피셜 차트 24위, 호주 ARIA 차트 11위를 기록하며 1집보다 높은 순위에 올랐습니다. 음악성과 상업성 모두에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드러머 조시 워드가 교통사고로 생사를 오갈 정도의 중상을 입은 것입니다.
모든 멤버들은 밴드 활동과 투어를 중단하고 그의 회복에 전념했습니다.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의 큰 부상에 데이브는 새 앨범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2019년 10월 조가 복귀 무대를 가지며 완전체가 되었고, 데이브는 조의 사고와 이후 닥친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늘 곁에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글래스 애니멀스의 음악을 한층 더 깊고 진솔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Dreamland 앨범과 Heat Waves 역주행 신화
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음악에 담지 않던 데이브는 3집에서만큼은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는 자전적 회고록 같은 앨범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2020년 발표된 'Dreamland'는 과거의 추억과 그리운 사람들, 예전에는 당연했지만 더 이상 쉽게 누릴 수 없는 일상적인 것들을 담았습니다. 데이브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팀발랜드, 넵튠스, 더 비치 보이스 등의 영향을 받아 90년대와 2000년대 향수를 자아냅니다.
앨범 아트는 데이브의 머리가 그래픽화되어 삽입된 베이퍼웨이브 스타일로,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컨셉으로 한 드림랜드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자신에게 독이 되지만 끊어낼 수 없는 관계를 표현한 'Your Love (Déjà Vu)'와 변해버린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과거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Tangerine' 등 위태로운 관계와 추억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에는 글래스 애니멀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Heat Waves'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 곡을 데이브는 1시간 만에 가사를 완성했습니다. 6월에 세상을 떠난 친한 친구를 그리며 쓴 가사는 팬데믹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넸습니다.
'Heat Waves'의 뮤직비디오는 록다운으로 봉쇄된 도시에서 데이브가 여러 개의 TV를 가지고 거리를 걷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집에 갇힌 주민들이 각자의 핸드폰으로 촬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2021년 1월 16일 빌보드 핫 100 차트 100위로 데뷔한 이 곡은 59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고, 2022년 3월 10일 마침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차트 역주행은 몇 주 만에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Heat Waves'는 59주라는 기록적인 기간이 걸렸습니다. 이는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보유했던 35주보다 24주나 더 긴 기록입니다. 또한 5주 연속 1위를 달성하며 1997년 스파이스 걸스의 'Wannabe'가 세운 4주 연속 1위 기록도 넘어섰습니다. 데이브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모두 맡은 곡이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것은 2014년 퍼렐 윌리엄스의 'Happy'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역주행의 비결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스포츠 게임 FIFA 21의 주제가로 삽입되었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틱톡에서 30억 개 이상의 영상이 공유되며 대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전 세계 라디오를 통해 노출되기 시작했고, 결국 각종 차트 1위를 거머쥐었습니다. 사상 첫 빌보드 1위를 차지할 당시 멤버 에드먼드가 속옷 바람으로 멤버들과 얼싸안고 축하했다는 에피소드는 이들의 기쁨을 짐작하게 합니다.
저는 직장 다니면서도 가끔 유튜브로 글래스 애니멀스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봅니다. 그 몽환적인 사운드는 현실을 잠깐 흐리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SNS와 단체사진으로 다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속마음은 말 못 하는 세대의 정서를 이들은 정확히 포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스, 비트, 보컬 이펙트가 겹겹이 쌓이며 하나의 꿈같은 공간을 만드는 그들의 사운드는 단순한 팝을 넘어 청각적 풍경을 구축합니다.
똘똘 뭉친 소꿉친구 4명이 우정과 서로를 위로하며 어려웠던 시기를 이겨내고 달성한 역주행 신화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글래스 애니멀스는 인디 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실험적이지만 접근 가능하고, 감정을 직설적으로 외치지 않고 은은하게 스며들게 만듭니다.
비평적으로 보자면 Dreamland는 기억과 성장, 디지털 시대의 파편화된 자아를 다루며 질감이 풍부한 사운드를 구축했습니다. 'Heat Waves'는 부드럽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 상실과 그리움이 깊게 깔려 있습니다. 이들이 앞으로도 이런 진정성 있는 음악을 계속 들려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군중 속 고독을 노래하는 이 밴드는 현대인의 감정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