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성도가 낮은 음악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처음 "Last Nite"를 들었을 때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거칠고, 보컬도 불안정하고, 전체적으로 뭔가 덜 다듬어진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뒤에도, 몇 주 뒤에도 그 노래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더 스트록스는 그런 밴드입니다. 처음엔 별것 없어 보이는데, 나중에 보면 어느새 삶의 특정 장면마다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이유를 파고든 기록입니다.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그 단순함의 정체: 더 스트록스
더 스트록스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왜 명반이야?" 저도 고등학교 시절엔 그랬습니다. 그때는 강한 후렴과 정교한 편곡이 있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더 스트록스의 2001년 데뷔 앨범 'Is This It'은 그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낙제에 가까웠습니다. 코드는 단순하고, 기타는 짧게 내려치며, 드럼은 반복됩니다. 뭔가를 보여주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음악이었죠.
그런데 이 단순함은 실력 부족이 아니라 철학이었습니다.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는 NME와의 인터뷰에서 이 앨범을 작업할 때 "녹음 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들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처음 이 얘기를 접했을 때 저는 그게 허세처럼 들렸는데, 막상 그 맥락에서 앨범을 다시 들어보니 완전히 다르게 들렸습니다. 무심한 게 아니라, 무심하게 들리도록 설계한 음악이었던 겁니다.
더 스트록스가 데뷔한 2000년대 초는 록 음악이 조금 거추장스러워지던 시기였습니다. 70~80년대 포스트 펑크의 정신을 계승하되, 그 우울함과 무거움을 걷어내고 더 가볍고 쿨한 방향으로 재해석하는 것. 그게 더 스트록스가 연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흐름은 이후 악틱 몽키스, 킬러스 같은 밴드들에게도 직접적인 충격을 안겼고, 악틱 몽키스의 알렉스 터너는 훗날 자신의 가사에 그 영향을 공공연하게 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음악을 단순히 '레트로 감성'으로 분류하는 시각이 좀 답답합니다. 'Is This It'이 7~80년대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낸 음악이었다면 이 정도 파급력은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당시 동시대 음악과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트렌드가 됐습니다. 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대한 저항 의식도 없고, 너바나식의 자기혐오도 없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관계와 감정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낡아 보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뉴욕이라는 도시와 배경음악
더 스트록스를 이야기할 때 뉴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밴드는 맨해튼의 사립학교에서 뭉친 청년들로 시작했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작은 라이브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쌓았습니다. 부모의 지원 없이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간 과정은, 사실 이들의 음악이 왜 그렇게 들리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줍니다. 화려한 스튜디오 사운드가 아니라, 클럽 무대에서 직접 몸으로 다져진 소리입니다.
제가 뉴욕에 처음 갔을 때, 밤에 혼자 거리를 걷다가 이어폰으로 더 스트록스를 틀었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도 이 밴드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냥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 정도였는데, 뉴욕의 밤거리에서 들으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화려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지쳐 있는 도시. 시끄럽지만 안쪽은 공허한 느낌. 그게 더 스트록스의 음악과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밴드는 뉴욕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뉴욕 자체를 소리로 변환한 것 같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멤버 구성만 봐도 그 도시의 냄새가 납니다. 최초의 모델 에이전시를 세운 존 카사블랑카스의 아들 줄리안, 그리고 스위스 유학 시절 줄리안과 잠깐 만났다가 다시 미국에서 재회한 기타리스트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 학비가 억 단위에 달하는 사립학교 출신들이지만, 이들이 음악을 만든 장소는 세련된 스튜디오가 아니라 동네 클럽의 좁은 무대였습니다. 그 어긋남이 더 스트록스라는 밴드의 질감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2023년 명품 브랜드 셀린느의 FW 컬렉션 런웨이에서 더 스트록스가 공연했습니다. 수석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이 컨셉으로 잡은 건 2000년대 인디의 시대였습니다. 그 자리에 스트록스가 선 건 단순한 섭외가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 인디 씬에서 가장 선명한 기준점이 됐던 밴드가 그 시대의 미학을 대표하는 무대에 오른 것, 그게 이 밴드의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Is This It, 아무 일도 없던 밤들의 기록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 밤늦게 혼자 이어폰 끼고 학교 근처를 걷던 날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하루였는데, "Someday"를 들으면서 걷다가 이상하게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음악이 왜 좋은지'를 언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 스트록스의 음악은 감정을 키우지 않습니다. 이미 있는 공허함 위에 그대로 얹힐 뿐입니다. 그 순간을 과장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습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 음악은 또 다른 맥락을 얻었습니다. 출근길에는 잘 틀지 않습니다. 힘이 너무 빠질 수 있어서요. 하지만 퇴근 후 혼자 있는 시간에 들으면 묘하게 위로가 됩니다. 희망적인 위로가 아니라 "그래, 원래 이런 거지"라는 식의 위로입니다. 이 밴드의 음악에는 모든 걸 극복하려는 의지도, 완전히 포기하는 체념도 없습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실제 삶의 대부분과 가장 닮은 감정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의 보컬은 기술적으로 탁월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힘이 들어가지 않고, 때로는 음정도 아슬아슬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이 보컬이 강력합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목소리는 감정을 전달하려고 너무 애쓰는 티가 납니다. 줄리안의 무심한 보컬은 반대로 듣는 사람이 그 감정을 직접 채우게 만듭니다. 음악이 빈 공간을 의도적으로 남겨두는 겁니다.
2020년에 발표한 6집 'The New Abnormal'은 코로나 팬데믹 직후에 나왔습니다. 스트록스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사운드였고, 이 앨범으로 커리어 첫 그래미를 받았습니다. 20년이 지난 밴드가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는 꽤 의미 있다고 봅니다. 더 스트록스가 만든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물결은 이미 빌리 아일리시, Wet Leg, 검정치마 같은 아티스트들에게도 흘러들었습니다. 그 씨앗이 이 앨범 하나에서 시작됐다는 게, 단순하기로 유명한 이 음악이 가진 가장 복잡한 유산입니다.
더 스트록스를 들어본 분들 중에 "이게 왜 좋아?"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반응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음악은 한 번 들어서 바로 설득되는 음악이 아닙니다. 특정 상황, 특정 시간대, 특정 감정 상태에서 들었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음악입니다.
17년 만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통해 다시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그냥 공연이 기대된다는 느낌보다 뭔가 오래된 것을 다시 꺼내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2000년대는 이미 지나갔고, 그 시절의 공기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공기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밴드가 무대에 선다면, 한 번쯤 그 앞에 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단, 완벽한 공연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이 밴드는 원래 그렇지 않았고, 그게 이들의 정체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