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스티벌 무대 앞에서 처음 Deftones를 봤을 때, 저는 그들이 단순히 '시끄러운 밴드'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치노 모레노의 비명이 여름밤 공기를 찢는 순간, 그 안에는 분노만이 아니라 묘한 슬픔이 섞여 있었습니다. 땀과 먼지 속에서 뛰면서도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경험, 그게 Deftones였습니다.
1990년대부터 활동해온 이 밴드가 요즘 Z세대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뉴메탈이라는 장르가 200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Deftones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요. 그리고 왜 20대 초반 젊은 세대가 30년 전 밴드의 음악에 열광하는 걸까요.
뉴메탈의 원조, 하지만 거기 머물지 않았던 밴드 데프톤즈
Deftones를 뉴메탈로 분류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 밴드를 그 틀에만 가두는 게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1988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결성된 이들은 Korn과 함께 뉴메탈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보컬 치노 모레노, 기타리스트 스티븐 카펜터, 드러머 에이브 커닝햄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만나 시작한 밴드는, 1995년 데뷔 앨범 'Adrenaline'으로 메이저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멤버들의 음악 취향이 처음부터 달랐다는 점입니다. 스티븐 카펜터는 메탈리카, 앤스랙스 같은 공격적인 메탈을 선호했고, 치노 모레노는 디페쉬 모드, 큐어, 스미스 같은 뉴웨이브와 포스트펑크를 좋아했습니다. 이 상반된 취향 때문에 둘이 자주 다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 갈등이 Deftones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97년 두 번째 앨범 'Around the Fur'는 'My Own Summer'와 'Be Quiet and Drive' 같은 곡으로 MTV에서 큰 히트를 쳤습니다. 저는 이 앨범 커버의 붉은 조명 아래 여성 사진이 인상적이었는데, 알고 보니 치노 모레노는 이 커버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멤버들이 결혼한 상태에서 찍힌 사진이 불륜으로 오해받을까 봐 걱정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시기 뉴메탈은 절정기를 맞았습니다. 림프 비즈킷, 슬립낫, 린킨 파크가 차트를 장악했고, 젊은 백인층은 얼터너티브 록보다 더 공격적이고 카타르시스적인 음악을 찾았습니다. 다운튜닝된 기타 리프, 힙합 리듬, 개인적 분노를 다루는 가사가 뉴메탈의 특징이었죠.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비슷한 음악이 범람하면서 뉴메탈은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그런데 Deftones는 달랐습니다. 다른 밴드들이 같은 공식을 반복할 때, 이들은 슈게이즈, 트립합, 포스트록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White Pony, 그리고 음악적 전환점
2000년 발매된 'White Pony'는 제가 생각하기에 Deftones 커리어의 결정적 순간입니다. 이 앨범은 뉴메탈과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앨범 제목부터 의미심장한데, 'White Pony'는 코카인 은어이자 성적 욕망의 상징이며, 환상과 도피를 동시에 의미합니다. 치노 모레노가 만든 가사는 약물, 환각, 성적 이미지로 가득한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앨범 작업 중에도 치노와 스티븐은 음악적 방향을 두고 충돌했다고 합니다. 치노는 서정적이고 멜로디컬하게 가길 원했고, 스티븐은 더 헤비하게 가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대표곡 'Change'가 즉흥 잼 세션에서 만들어지면서 앨범의 방향이 정해졌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저는 'Change'를 들으면서 뉴메탈 밴드가 이런 멜랑콜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강렬한 디스토션 뒤에 숨은 슬픔이 묘하게 가슴에 남았습니다.
'White Pony'는 슈게이징, 트립합, 포스트록 요소를 본격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빌보드 앨범 차트 3위까지 올라갔지만, 레이블 입장에서는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그래서 레이블이 히트 싱글을 만들라고 압박했고, 치노 모레노는 심통이 나서 전형적인 뉴메탈 스타일의 'Back to School'을 만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이 곡은 어느 정도 히트했지만, 치노는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Deftones가 상업성보다 음악적 신념을 우선시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앨범에 수록된 'Korea'라는 곡은 한국과 전혀 상관없는데, 치노가 길에서 만난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White Pony'는 결국 그래미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며 Deftones를 '메탈계 라디오헤드'로 만든 앨범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별명이 과장이 아니라고 봅니다.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도 자기 색깔을 지킨 밴드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2003년 셀프 타이틀 앨범 'Deftones'는 슈게이즈 영향이 더 짙어졌습니다. 'Minerva' 같은 곡에서 키보디스트 프랭크 델가도의 신디사이저가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Deftones 사운드의 입체감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이 시기 치노 모레노는 마약 중독과 이혼 등 개인적 문제로 힘들어했고, 사이드 프로젝트 Team Sleep 활동으로 밴드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합니다.
2006년 'Saturday Night Wrist'는 그런 어두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앨범이었습니다. 평단은 호평했지만 멤버들조차 만족하지 못했다고 하죠. 그래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다음 앨범 'Eros' 작업을 시작했는데, 2008년 베이시스트 치 쳉이 심각한 교통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지면서 모든 게 멈췄습니다. 치 쳥은 201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Eros'는 영원히 미공개작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이 앨범이 언젠가 공개되길 바라는 팬 중 한 명입니다.
Z세대가 Deftones를 재발견한 이유
Deftones가 요즘 20대 초반 사이에서 다시 뜬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Y2K 리바이벌 현상입니다. Z세대가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2000년대 스타일을 재현하면서 그 시대 음악을 찾다가 뉴메탈까지 흘러들어간 겁니다. 두 번째는 슈게이즈 장르의 부활입니다. My Bloody Valentine, Slowdive 같은 밴드가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슈게이즈 요소를 일찍부터 받아들인 Deftones도 자연스럽게 재조명된 것이죠.
저는 여기에 세 번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Deftones의 음악이 가진 복합적 감정입니다. 다른 뉴메탈 밴드들이 분노와 공격성만 내세웠다면, Deftones는 우울함, 관능성, 내밀함을 동시에 담았습니다. 제가 퇴근 후 이어폰을 끼고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화가 나면서도 슬퍼지는 묘한 감정이 듭니다. 이 양가감정이 불안하고 복잡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 Z세대의 심리 상태와 맞물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2010년 발매된 'Diamond Eyes'는 치 쳉의 비극 이후 낙관적 분위기로 만든 앨범입니다. 퀵샌드 출신 세르지오 베가를 새 베이시스트로 맞이하고, 프로듀서 닉 래스큘리넥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이 앨범은 'White Pony' 이후 최고의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밴드의 제2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저는 'Diamond Eyes'에서 Deftones가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고 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무겁고 어두운 사운드를 유지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이후 2012년 'Koi No Yokan', 2016년 'Gore', 2020년 'Ohms'를 꾸준히 발매하며 Deftones는 '믿고 듣는 밴드'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는 다른 뉴메탈 밴드들과 달리, 이들은 매 앨범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2025년 발매 예정인 열 번째 앨범 'Private Music'도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닉 래스큘리넥이 다시 프로듀싱을 맡았고, 올드 팬과 새로운 팬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거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Deftones가 뉴메탈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단순히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슈게이즈의 몽환적 텍스처, 포스트록의 공간감, 아트록의 실험성, 드림 팝의 서정성이 뉴메탈의 공격성과 공존합니다. 이런 복합성이 Deftones를 30년 넘게 살아남게 한 비결이라고 봅니다.
저는 밤늦게 불을 끄고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를 볼 때 Deftones를 배경으로 자주 틀어놓습니다. 그러면 현실과 환상이 섞이는 느낌이 듭니다. 그들의 음악은 단순히 화를 부추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안의 거칠고 예민한 감정을 인정하게 만듭니다. "괜찮다, 네 안에 이런 면도 있다"고 말해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힘든 날이면 여전히 Deftones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Deftones는 제게 '상처 입은 낭만'입니다. 거칠지만 섬세하고, 공격적이지만 동시에 우울합니다. 치노 모레노의 비명과 속삭임이 교차하는 보컬, 스티븐 카펜터의 다운튜닝된 리프, 프랭크 델가도의 신디사이저가 만들어내는 입체적 사운드는 파도 속에서도 어딘가 낭만적인 빛을 비춥니다. 이 모순이 Deftones를 특별하게 만들고, Z세대가 그들을 다시 찾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거장이 된 밴드가 여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음악이 시대를 초월할 수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