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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plo의 사운드 여정, 클럽에서 리우까지 (탐험가, 프로젝트, 공간)

by oasis 2026. 2. 27.

무대 뒤에서 바라본 Diplo와 관중들

 

Diplo는 그래미를 5번 수상한 프로듀서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 이름보다 Major Lazer, Jack Ü, LSD, Silk City 같은 프로젝트명으로 더 유명합니다. 저는 처음에 이 팀들이 전부 같은 사람 손에서 나왔다는 걸 몰랐습니다. 친구가 강릉 가는 길에 플레이리스트를 보내줬는데, 해 질 무렵 고속도로에서 베이스가 차 안을 울릴 때 그 음악이 공간을 바꾸는 걸 체감했습니다.

Diplo의 음악을 들으면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건 여행과 닮아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지 사운드를 직접 채집합니다. 브라질 빈민가의 바일리 펑크, 자메이카의 댄스홀, 아프리카의 아프로비츠까지 그가 손댄 장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장르 경계를 허무는 사운드 탐험가 Diplo

Diplo는 주류 EDM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지역의 음악을 찾아다닙니다. 2003년 필라델피아에서 친구들과 연 'Hollertronix'라는 파티는 미국 댄스 음악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사건입니다. 당시 그 파티를 경험한 사람들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별의별 노래가 뒤섞여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파티 소문은 금세 퍼졌고, Diplo는 런던까지 DJ를 하러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M.I.A.를 만났습니다. M.I.A.는 Diplo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가 온다는 전단지만 보고 펠 브릭 클럽으로 갔습니다. 그날 Diplo가 M.I.A.의 곡을 틀었고, 둘은 바로 의기투합했습니다. 둘 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이한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아리에서 전자 사운드를 밴드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걸 기타로 구현 가능해?"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참을 씨름했습니다. 결국 완벽히 재현하진 못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재밌었습니다. Diplo의 음악도 그렇습니다. 장르를 규정하려 들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냥 틀고 몸을 맡기면 됩니다.

Diplo와 M.I.A.가 빠졌던 장르가 바로 브라질 빈민가에서 탄생한 바일리 펑크입니다. 둘은 2004년 M.I.A.의 믹스테이프에 이 장르를 활용했고, 이후 여러 곡에서 사용하며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지금은 일반 클럽이나 파티에서도 바일리 펑크가 나오는데, 이렇게 된 데는 이 두 사람의 공이 큽니다.

Diplo는 바일리 펑크에 꽂혔을 때 직접 리우데자네이루 슬럼가로 가서 다큐멘터리를 찍었습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그는 영상 작업에도 능숙했습니다. 저는 그의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이 다큐를 봤는데, 말로만 듣던 장르를 눈으로 확인하니 이해가 훨씬 빨랐습니다. Diplo가 어떻게 새로운 사운드에 접근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꼭 보시길 권합니다.

끝없이 변화하는 협업 프로젝트

Diplo는 혼자보다 함께 작업할 때 더 빛납니다. Major Lazer는 그가 Switch와 함께 2008년 결성한 팀입니다. 자메이카 캐리비안 사운드를 제대로 다뤄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첫 앨범 녹음은 직접 자메이카로 가서 유명한 터프 공 스튜디오에서 진행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Pon de Floor'가 들어있습니다. 이 곡은 훗날 비욘세가 샘플링하면서 미국에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Switch는 2011년 말 음악적 견해 차이로 팀을 떠났습니다. Diplo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Switch의 헌신이 부족해서 내보냈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협업은 결국 서로의 노력이 맞아떨어져야 유지됩니다.

두 번째 멤버로 Jillionaire와 Walshy Fire가 들어오면서 Major Lazer는 스케일을 확 키웁니다. 무대에 댄서를 올리고 깃발을 흔드는 퍼포먼스가 시작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Major Lazer의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이 멤버로 낸 'Peace Is the Mission' 앨범은 캐리비안 사운드를 완전한 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덕분에 모음바톤 같은 생소한 장르도 대중화됐습니다.

Major Lazer는 2016년 3월 쿠바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캐리비안 사운드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쿠바로 향한 것입니다. 2019년 3월에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끈적이는 비트가 유행하자 Diplo는 또다시 현지로 날아갔습니다. 나이지리아의 Burna Boy, 남아공의 Babes Wodumo 같은 아프리카 스타들을 피처링으로 모셨습니다.

Jack Ü는 2013년 Skrillex와 Diplo가 결성한 듀오입니다. 특정 사운드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Major Lazer와 달리, Jack Ü는 Diplo가 Skrillex의 음악을 좋아해서 시작됐습니다. 둘이 합치면 뭔가 새로운 게 나올 것 같았다고 합니다. 원래는 아시아 래퍼들하고만 작업할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Diplo가 K-POP의 영향을 받아들였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실제로 둘 다 국내 아티스트와 작업했습니다. 2NE1의 CL, 빅뱅의 지드래곤과도 함께했습니다. K-POP이 세계적으로 뜨기 전부터 이런 시도를 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정작 Jack Ü 앨범은 K-POP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둘이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습니다. 앨범의 관전 포인트는 자기 색이 강한 두 사람이 과연 섞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들어보니 엄청 잘 어울렸습니다.

Justin Bieber와 함께한 'Where Are Ü Now'는 당시 어중간했던 비버를 섹시한 아티스트로 바꿔놓았습니다. 세련된 프로덕션이 비버의 보컬을 잘 살려준 곡입니다. 이 곡은 그래미 베스트 댄스 레코딩을 수상했고, 비버도 그래미 수상자가 됐습니다. 앨범도 관련 부문 상을 받으며 Jack Ü는 그래미 2관왕을 달성했습니다.

LSD는 2018년 Sia, Labrinth와 함께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름은 멤버 앞 글자를 땄는데, 이분들이 추구하는 음악과 잘 어울립니다. 원래는 Labrinth와 Sia가 먼저 만났다가 Diplo가 프로듀서로 불려진 건데, 셋이 해보니 합이 좋아서 아예 팀을 결성했습니다.

LSD는 Diplo의 전 팀과 차이가 있습니다. Labrinth와 Sia라는 멜로디 장인 두 명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LSD는 Diplo의 프로덕션도 좋지만, Sia와 Labrinth가 만든 멜로디 위주의 보컬을 듣는 맛이 있습니다. 멜로디를 워낙 잘 짜서 국내에서도 유독 LSD에 대한 인기가 높습니다.

클럽에서 드라이브까지, 공간을 바꾸는 음악

Silk City는 Mark Ronson과 Diplo가 결성한 팀입니다. LSD와 같은 2018년 결성됐습니다. 이름은 2003년 둘의 첫 만남 장소였던 필라델피아의 식당 Silk City에서 따왔습니다. 이 식당에는 "Don't Silk City"라는 슬로건이 있었는데, 음악과 잘 어울립니다.

저 슬로건처럼 둘은 과거 음악을 참고해 쿨하고 섹시한 분위기를 되찾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Diplo는 이제 정신없고 시끄러운 게 질려서 시카고 하우스에서 느껴지는 빈티지한 감성을 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파트너로 Mark Ronson을 선택한 것입니다.

둘은 Silk City 계정에 스페셜 리픽 믹스 시리즈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걸 쭉 들어보면 둘이 어떤 분위기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카페나 바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가게에 이거 하나 틀어놓으면 분위기가 끝장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Silk City 음악을 엘레강트 하우스라 정의합니다. 핵심은 세련된 분위기입니다. Diplo가 LSD에서는 탑 프로듀서로 활약했다면, Silk City에서는 다시 분위기를 체인지하는 DJ 본연의 역할로 돌아온 것입니다.

특히 Dua Lipa와 함께한 'Electricity'는 Diplo가 평소 하던 스타일이 아니라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둘은 이 곡을 완성하기까지 총 12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Florence Welch, The xx, Romy, Diplo의 음악 단짝인 Jr Blender 등 여러 명이 참여했습니다.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피처링을 구하는 거였습니다. 강렬하면서도 감정을 동시에 전해줄 사람을 찾았는데, 어렵게 Dua Lipa를 떠올렸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다시 한번 Diplo는 그래미를 받았습니다.

저는 Diplo의 음악을 드라이브할 때 자주 듣습니다. 강릉 가는 길에 처음 들었던 그 경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베이스가 차 안을 울릴 때 음악이 공간을 바꾸는 걸 체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Diplo가 추구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생각은 나중에 따라오는 음악입니다.

Diplo는 누구와 함께하건 손대는 것들을 죄다 성공시켰습니다. 언론에서는 이런 그를 향해 '절충주의자'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절충주의는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각각의 장점을 취해 조화를 이뤄내는 걸 말합니다. Diplo가 딱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네 팀 말고도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한 프로젝트인 Higher Ground, 그리고 자신이 세운 레이블 Mad Decent를 통해서도 여러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Diplo는 서로의 장점을 잘 합쳐내기 위해 본인은 물론 상대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한 노래를 만들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희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지거나 혹은 내 안의 한계를 부수고 싶을 때 이렇게 타인과 콜라보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한쪽이 일방적이 되지 않도록 내가 뭘 잘하는지, 상대가 뭘 잘하는지를 확실히 공부하고 가야겠습니다.

Diplo는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프로듀서입니다. EDM, 댄스홀, 팝, 힙합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그는 자신이 전면에 서기보다는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흐름을 만듭니다. 그의 강점은 '연결'입니다. 지역적 사운드를 글로벌 팝으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문화적 차용에 대한 비판도 따라다닙니다. 브라질, 자메이카, 아프리카의 음악을 가져와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지적입니다. 일리 있는 비판이지만, Diplo는 그 과정에서 현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최소한의 존중은 있었다고 봅니다.

Diplo는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읽는 인물입니다. 그의 음악은 개인의 서사보다 집단의 에너지에 가깝습니다. 클럽에서 울릴 때 가장 빛납니다. 하지만 저처럼 드라이브할 때 들어도 좋습니다. 공간을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Diplo의 즐거운 음악 여정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가 다음엔 어디로 가서 어떤 소리를 채집해올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저도 다음 드라이브 때 또 그의 음악을 틀 겁니다.


참고: https://youtu.be/rgT2cG9yK_Q?si=53m6hZokbB1C9-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