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한동안 레인보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든 생각이 "멋있다"가 아니라 "이게 왜 이렇게 과장됐는데도 진짜처럼 들리지?"였으니까요.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오래 맴돌았습니다.
레인보우는 기타리스트 Ritchie Blackmore가 이끌었던 하드록 밴드입니다.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를 만든 사람이라면 이미 그 이름만으로도 설명이 끝나는 수준이죠. 1975년 데뷔 이후 멤버 교체가 잦았지만, 그 과정에서 Ronnie James Dio, Graham Bonnet 같은 보컬리스트와 드러머 Cozy Powell이 거쳐 갔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록 역사 교과서 같은 밴드입니다.
나에게 있어 레인보우의 첫인상: 노래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듣다.
레인보우를 처음 접한 게 언제였는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Stargazer를 떠밀어 올려줬고, 저는 별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8분이 지나도 끄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요즘 음악에 익숙한 귀로 들으면, 이 정도의 스케일은 오히려 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서사가 너무 드라마틱하고, 전개가 느리고, 모든 요소가 "최대치"로 설정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다면 중간에 껐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짧고 강렬한 음악이 더 좋았고, 긴 곡은 그냥 지루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몇 번 더 듣다 보니 뭔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음악이 단순히 길고 웅장한 게 아니라, 하나의 서사 구조 자체라는 걸 느끼게 된 겁니다. 시작이 있고, 긴장이 쌓이고, 폭발이 있고, 여운이 남는 구조. 곡 하나가 마치 단편소설처럼 읽혔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 음악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Stargazer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을 때, 노래를 들었다기보다 어떤 세계를 하나 통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게 레인보우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게 된 계기였습니다.
Temple of the King은 또 다른 인상을 줬습니다. 서정적이고, 블루스 냄새가 나면서도, 중세풍의 묘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폭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이 된다는 가사 내용인데, 단순한 판타지 세계관처럼 보이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인 감정을 건드립니다. 레인보우 초기 스타일의 핵심이 이 곡 안에 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Man on the Silver Mountain도 비슷한 맥락인데, 단순하고 강렬한 리프 하나로 이렇게 오래 기억될 수 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합니다.
처음에 "과장됐다"고 느꼈던 그 부분이, 사실은 레인보우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이들은 현실을 그대로 담으려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더 크게, 더 극적으로 재구성합니다. 그리고 그걸 끝까지 진지하게 밀어붙입니다. 그 진지함이 듣는 사람을 그 세계 안으로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레인보우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곡, Stargazer
Stargazer는 레인보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곡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순히 인기곡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곡 안에 레인보우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8분짜리 대곡입니다. Ritchie Blackmore의 장엄한 기타 리프가 시작을 이끌고, 거기에 Ronnie James Dio의 목소리가 얹히는 순간, 뭔가 다른 차원이 열리는 느낌이 납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는데, 처음 그 조합을 제대로 들었을 때 진짜로 그런 감각이 왔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고, 심포닉한 편곡이 중세 판타지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헤비 메탈 역사에서 이 곡이 중요하게 평가받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럽 여행 중에 이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독일과 체코의 오래된 도시들을 걸으면서 이어폰에 Stargazer를 넣었을 때, 현실과 약간 어긋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대 도시를 걷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중세 판타지 같은 이미지가 계속 겹쳐졌습니다. 레인보우의 음악이 현실을 벗어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 위에 다른 층을 하나 더 올려놓는다는 느낌이 거기서 왔습니다.
블랙모어의 기타는 단순한 연주가 아닙니다. 저는 이걸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장치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가 기타로 만들어내는 흐름 위에, 디오의 목소리가 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두 사람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이완의 구조는 단순한 록 밴드의 그것을 넘어섭니다.
Catch the Rainbow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잔잔하고 서정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각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우린 무지개를 잡을 거라 믿었고, 바람을 타고 태양으로 날아가려 했지"라는 가사가, 판타지처럼 들리면서도 어딘가 인간의 보편적인 갈망을 건드립니다. Kill the King은 또 다릅니다. 파워 메탈의 원형이라 불릴 만큼 이후 수많은 메탈 밴드들에게 영향을 줬는데, 직접 들어보면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바로 납득이 됩니다. 이 두 곡의 분위기 차이만 봐도, 레인보우가 단일한 색깔을 가진 밴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다소 극적이고, 어떤 부분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이 음악을 공유했을 때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렸습니다. "옛날 느낌 너무 난다"는 쪽과 "이게 진짜 록이다"는 쪽으로 딱 나뉘었습니다. 저는 후자 쪽에 가깝습니다. 그 과장과 극적인 전개 자체가 레인보우의 핵심이고, 그걸 스스로 농담처럼 다루지 않고 끝까지 진지하게 밀어붙이는 태도가 이 음악을 지금까지 살아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Dio, 레인보우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멤버
레인보우를 이야기할 때 Ronnie James Dio를 빼면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 밴드의 초기를 정의한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디오는 원래 밴드 ELF에서 노래를 하던 미국 출신 보컬리스트였습니다. 리치 블랙모어에게 ELF 멤버들과의 협연을 제안했고, 그렇게 레인보우가 탄생했습니다. 이 조합이 만들어낸 초기 레인보우 사운드는 블루스 기반의 하드록에 블랙모어 특유의 중세풍 분위기가 더해진 것이었습니다. Temple of the King이나 Catch the Rainbow가 그 시기를 대표하는 곡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디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Rainbow Eyes에서 발견했습니다. 3집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토니 카니의 키보드, 루디 리사비의 플룻, 그리고 현악 앙상블이 함께하는 곡입니다. 강렬한 록 사운드가 아니라, 거의 오케스트라에 가까운 편성 위에서 디오의 보컬이 펼쳐집니다. 무지개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존재와의 짧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인데, 디오가 이런 곡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좀 놀라웠습니다.
처음 이 음악을 들을 당시 저는 디오를 "파워풀한 보컬리스트"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큰 목소리, 강한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Rainbow Eyes를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사람은 단순히 강한 게 아니라, 음악 안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디오가 레인보우를 떠난 후 그 자리를 채운 건 Graham Bonnet이었습니다. 록커답지 않게 단정한 외모의 보컬리스트였는데, Since You Been Gone을 들어보면 왜 당시에 히트를 했는지 바로 이해됩니다. 기존 레인보우의 묵직하고 심오한 느낌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훨씬 캐치하고 팝적이었습니다. 보넷 이후에는 레인보우, 알카트라즈, 마이클 쉥커 그룹 등을 거치며 오랜 시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멤버 교체가 잦다는 건 밴드의 불안정함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레인보우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각 시기마다 사운드가 바뀌고, 그 변화 속에서 걸출한 뮤지션들이 자기 색깔을 드러냈습니다. 특정 멤버 구성으로만 들을 게 아니라, 시기별로 나눠서 들으면 전혀 다른 밴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레인보우의 음악은 일종의 신화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영웅, 갈망, 좌절, 그리고 초월. 디오가 그 구조에 목소리를 부여했고, 블랙모어가 그 구조에 음악을 부여했습니다. 그 조합이 지금까지도 이 음악이 살아 숨쉬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이 음악을 자주 틀지는 못합니다.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음악이라 일상 속에서 쉽게 배경으로 깔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만 듣고 싶은 날에는 다시 찾게 됩니다. 그럴 때 레인보우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 같은 느낌을 줍니다.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음악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이 밴드에 대한 가장 솔직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레인보우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면,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될 수 있습니다. 저는 Temple of the King이나 Rainbow Eyes처럼 서정적인 곡부터 들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Stargazer는 조금 익숙해진 다음에 듣는 게 훨씬 더 잘 들립니다. 이 음악은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가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