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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살리아,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노래하는 가수 (이유, 서사, 오케스트라)

by oasis 2026. 3. 12.

로살리아 무대의 한 장면

 

로살리아의 네 번째 앨범 LUX는 첫 주 46,000장을 팔아치우며 빌보드 200 탑 10에 진입했습니다. 스페인어권 여성 아티스트로서는 전례 없는 기록이었죠. 저는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이전 앨범 모토마미의 흥겨운 레게톤 비트를 기대했는데, 첫 트랙부터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지고 라틴어가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낯설음이 계속 귓가에 남았습니다.

로살리아는 스페인 카탈루냐 고등음악원에서 플라멩코를 전공한 뒤 2017년 데뷔 앨범으로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익스페리멘털 팝, 레게톤, 힙합을 플라멩코와 결합시키며 라틴 음악의 영역을 확장했죠. 하지만 LUX에서 그녀는 정반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중음악인 클래식을 끌어안은 것입니다.

로살리아가 플라멩코에서 클래식으로 방향을 튼 이유

로살리아가 플라멩코를 팝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과정은 꽤 극적입니다. 2017년 데뷔 앨범 로스 앙헬레스에서 그녀는 어둡고 비극적인 플라멩코의 정서를 담아냈고, 2018년 졸업 작품으로 시작된 엘 말 케 키에로에서는 인더스트리얼과 익스페리멘털 사운드를 섞으며 플라멩코가 단순한 전통 음악이 아닌 현대 팝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2022년 모토마미는 틱톡 시대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앨범이었죠. 짧고 강렬한 후렴구, 레게톤 비트, 힙합적 태도가 결합되며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저는 모토마미를 들으며 로살리아가 이제 완전히 메인스트림 팝스타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 앨범은 스페인어 기반 음악이 댄스 음악을 넘어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영역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플라멩코를 월드 뮤직의 틀에서 끄집어내 팝의 중심 구조로 만든 성과였죠. 그런데 바로 다음 앨범에서 로살리아는 정반대 선택을 합니다. 2020년 발매된 LUX는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전면에 내세운 18트랙짜리 컨셉트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의 제목 LUX는 라틴어로 빛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기독교의 성인 힐데가르트와 올가, 이슬람의 라비아 바스리, 유대교의 미리아, 불교의 비말라 등 다양한 종교권의 여성 성인들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주목한 것이 완벽하고 순결한 성인의 모습이 아니라 섹스, 폭력, 범죄, 방황 같은 극도로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도 결국 한 종교의 빛이 된 여성들의 모순적인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로살리아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삶이 어떻게 성인의 길을 비출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요.

저는 이 지점에서 로살리아의 의도가 명확해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종교적 앨범을 만들려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과 가장 밝은 부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음악으로 탐구하려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앨범을 들어보면 첫 트랙부터 섹스, 폭력, 폭주 같은 강렬한 단어들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흐르는 오케스트라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죠. 이 극단적인 대비가 LUX의 핵심입니다.

13개 언어로 쌓아올린 영성의 서사

LUX에서 로살리아는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는 물론 포르투갈어, 영어, 라틴어, 히브리어, 우크라이나어, 중국어, 일본어 등 무려 13개의 언어로 노래합니다. 각 언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특정 성인의 삶과 대응하며 저마다 완결된 서사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라틴어는 초기 기독교 성인들의 언어이고, 히브리어는 유대교의 언어이며, 우크라이나어는 동방 정교회의 전통과 연결됩니다. 로살리아는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이 성인들의 삶을 깊이 탐구했고, 각 언어의 발음과 뉘앙스를 익히는 데 몰두했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 중국어와 일본어가 나오는 트랙에서 멈칫했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플라멩코 가수가 왜 동아시아 언어를 사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곡 전체를 들으며 그 언어들이 단순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로살리아는 각 언어를 통해 특정 성인의 목소리를 빌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악기처럼 사용되며, 언어 자체가 하나의 사운드 질감으로 기능했습니다.

이 앨범은 클래식 교향곡이나 오페라처럼 총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장은 순수함에서 벗어나는 단계, 두 번째 장은 세상과 친구가 되는 단계, 세 번째 장은 신과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단계, 네 번째 장은 작별과 귀환입니다. 이 네 개의 흐름이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만들어내죠. 로살리아는 자신의 본능인 지상에서 태어나 천상 세계에 다다랐다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앨범을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로살리아가 말하는 신은 멀리 있는 절대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신을 끊임없이 인간을 바라보고 흔들며 때로는 집요하게 따라붙는 존재, 심지어 스토커처럼 느껴질 수 있는 존재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이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졌지만, 앨범을 반복해서 들으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로살리아는 신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삶 곳곳에 개입하는 구체적인 힘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앨범의 중반부에서는 시련이 찾아옵니다. 신에게 헌신했지만 확신은 오지 않고, 사랑을 믿었지만 남은 건 배신과 상처뿐입니다. 로살리아는 연인으로서의 자신,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자신, 셀럽으로서의 자신 등 모든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피해자 의식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되찾으려 하죠.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천상과 지상도 아닌 지상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만 천상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고요.

오케스트라를 팝처럼 들리게 만든 음악적 실험

LUX의 음악적 구성은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합니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클래식 뮤지션 다니엘 비아르나손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클래식 음악의 골격을 완성했고, 여기에 카니예 웨스트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노골드, 일렉트로닉 음악가 베네시안 스네어스, 다프트 펑크의 기 마누엘 드 오멩 크리스토, 샬롯 갱스부르, 퍼렐 윌리엄스 등의 뮤지션들이 합류했습니다. 이들은 클래식 음악 기반에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팝 요소를 결합시켰습니다.

저는 특히 이 앨범의 프로덕션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팝 음악에 오케스트라를 덧붙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LUX는 그 반대입니다. 오케스트라를 팝처럼 들리게 만드는 방식으로 프로덕션을 구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후렴이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구성은 거의 없고, 팝적인 요소는 유령처럼 스쳐 지나가는 잔상으로만 남습니다. 이전 앨범 모토마미가 클럽 사운드로 도파민을 자극했다면, LUX는 엄중한 클래식 음악을 자신의 음악적 놀이터로 삼은 것입니다.

이 앨범은 한 곡씩 소비하기보다는 한 편의 교향곡이나 오페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두드러집니다. 저는 처음에 셔플로 몇 곡만 들었다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집에서 조용히 앉아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쭉 들으니 비로소 앨범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각 트랙이 독립적인 곡이 아니라 하나의 긴 이야기를 구성하는 챕터였던 것입니다.

로살리아의 목소리 역시 이 앨범에서 특별하게 사용됩니다. 13개의 복잡하고 신성한 언어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로살리아의 목소리 자체가 LUX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악기로서 기능합니다. 그녀는 플라멩코 전통에서 배운 감정 표현법을 클래식 구조 안에 녹여냈고, 극도로 진심 어린 감정이 담긴 개인적인 서사와 과감하면서도 치밀하고 섬세한 음악이 결합되며 LUX는 앨범이라는 형식의 가치를 증명해냅니다.

틱톡과 쇼츠를 의식한 짧고 강렬한 후렴이 주도하는 싱글 위주의 팝 시장에서, 이처럼 긴 호흡의 앨범 구성을 내놓는 것은 어떤 팝스타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셀럽이자 팝스타였던 로살리아는 자신의 위치를 트렌드에 맞춰 소비하기보다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이 결정은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습니다. 앨범은 빌보드 200 탑 10에 진입했고, 스페인에서는 1위로 데뷔하며 동시에 플래티넘을 기록했습니다. 스포티파이에서는 4,210만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스페인어권 여성 아티스트 첫날 스트리밍 최다 기록을 경신했죠.

저는 이 앨범을 들으며 로살리아가 성녀로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음악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삶이 순결해서 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 삶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성인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즉 성스러움은 깨끗함이 아니라 두려움을 통과한 이후의 상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살리아는 수많은 상처를 입은 뒤 용서라는 결정을 통해 상실 이후 남아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떠나보냅니다. 결국 모든 인간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며, 갈망하던 성녀가 아니라 그저 완성된 자기 자신의 상태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LUX는 결국 신에 대한 앨범이 아니라 신을 찾으려 했던 한 인간이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앨범은 지적인 앨범이지만 지식을 요구하는 앨범은 아닙니다. 13개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종교를 믿지 않아도 담긴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 각종 매체에서 만장일치로 찬사를 받고 있으며, 11월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25년 연말 올해의 앨범 리스트 상단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짧은 영상에 도파민에 절여져 영화 한 편 보기가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저 역시 최근에는 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LUX를 통해 긴 호흡의 앨범이 주는 특별한 경험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로살리아는 이 앨범을 통해 예술가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앨범이라는 형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최근 음악을 듣는 방식에 조금이라도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면, LUX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youtu.be/w2BwdVpnIR4?si=Lh14wNsAqBGYxCl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