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리암 갤러거, 솔로 락스타로서의 부활 (목소리, 협업, 귀환)

by oasis 2026. 3. 21.

브릿팝 레전드 프론트맨, 리암 갤러거

 

"오아시스 없이 혼자 뭘 할 수 있겠어?" 많은 사람들이 리암 갤러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노엘과의 결별 이후 비디아이마저 해체되고, 소속사도 밴드도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였죠. 그런데 그가 2022년 네버스 평원에 8만 명을 불러 모으며 완벽한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저는 런던 펍에서 원더월을 들으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는 걸 봤을 때, 이 음악이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라 한 세대의 정체성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리암 갤러거의 이야기는 실패 후 재기에 관한 것이고, 동시에 록스타라는 존재가 왜 여전히 의미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망가진 목소리로 혼자 남겨진 시간

2009년 파리 페스티벌 직전, 오아시스가 해체됐습니다. 형제간의 싸움이 극심해져서 노엘이 기타를 박살 내고 떠났고, 리암은 남은 멤버들과 비디아이라는 밴드를 만들었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리암의 목소리가 이미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는 겁니다.

오아시스 후반기부터 리암은 록스타의 쾌락을 즐기며 자기관리를 소홀히 했습니다. 술과 약물, 무리한 공연 일정이 쌓이면서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는 탁해졌고 호흡도 불안정해졌습니다. 비디아이의 두 앨범은 실패하지는 않았지만 성공하지도 못했고, 3년 만에 밴드는 해체됐습니다.

그때 리암은 완전히 혼자가 됐습니다. 스무 살부터 줄곧 밴드에 속해 있던 사람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된 거죠. 많은 이들이 "노엘의 멜로디 없이 네가 뭘 할 수 있겠냐"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도 그때 기사를 보면서 리암의 커리어가 이제 끝났다고 여겼습니다.

리암은 의욕을 잃고 술과 약물에 빠졌습니다. 트위터에 뻘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고,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잠적의 시간은 꽤 길었는데, 그 기간 동안 리암은 지난 20년을 돌아봐야 했습니다. 록스타로 살면서 놓쳤던 것들, 형과의 관계, 망가진 목소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요.

그러던 어느 날 오아시스 원년 멤버였던 본헤드가 리암의 멘탈을 잡아줬습니다. 여자친구이자 매니저인 데비 역시 "일어나서 무대로 돌아가라"며 의지를 불어넣었죠. 리암은 먼지 낀 기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약물을 멀리하며 매일 아침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는 결심했을 겁니다. "무대로 돌아가자. 그것도 개멋있게."

그렉 커스틴과의 협업으로 만든 솔로 앨범

2017년, 리암 갤러거는 첫 솔로 싱글 'Wall of Glass'로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하모니카 연주로 문을 여는 이 곡은 위풍당당한 부활을 알리는 서막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아, 이 사람 진짜 돌아왔구나" 싶었습니다. 목소리는 예전만큼 맑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거칠음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거든요.

이 곡이 실린 첫 솔로 앨범 'As You Were'는 탄탄했습니다. 리암은 이 앨범에 대해 10점 만점에 11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죠. 밴드 식 수공업에 익숙했던 그가 처음으로 외부 프로듀서와 공동 작업을 시도한 결과였습니다.

핵심 프로듀서는 그렉 커스틴이었습니다. 그는 아델의 'Hello'를 공동 작곡한 인물이자, 푸 파이터즈, 브루노 마스 같은 슈퍼스타의 앨범을 프로듀싱해온 베테랑이었죠. 그렉은 오아시스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팝적인 터치를 가미하려 했습니다. 이건 비욨세부터 테일러 스위프트까지 요즘 팝스타들이 택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앨범에서는 성숙해진 어른의 메시지가 흘러나왔습니다. 더 이상 사고를 치고 다니는 20대 록스타가 아니라, 과거를 돌아볼 줄 아는 아저씨가 된 거죠. 제가 대학 시절 동아리 공연에서 원더월을 불렀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때는 그냥 다 같이 즐기는 노래였는데 이제는 그 안에 담긴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2017년 맨체스터 아리아나 그란데 콘서트장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리암은 콜드플레이의 요청을 받아 자선 콘서트에서 'Live Forever'를 불렀습니다. "영원히 살 것"이라는 역설적인 메시지가 많은 맨체스터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죠. 평소 콜드플레이를 디스하던 리암이었지만, 그런 감정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얼마나 큰 위로의 힘을 가지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2집에서도 리암은 같은 프로듀서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멜로디 감각이 형 부럽지 않을 만큼 올라왔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었죠.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가 굉장히 감성적이었는데, 특히 'Once'라는 곡의 가사는 의미심장했습니다. 어떤 시야에서 보느냐에 따라 형에 대한 애증의 감정처럼 들리기도 했거든요.

리암은 여전히 옛날 록 음악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음악에도 열려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자식들과 저스틴 비버 콘서트에 가기도 하고, 해리 스타일스와 술친구가 되기도 했죠. 영국 그라임 힙합 아티스트인 스켑타에 대한 존경심도 드러냈습니다.

네버스 공연으로 증명한 록스타 리암 갤러거의 귀환

3집 'C'mon You Know'에서 공동 작업의 매력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인디밴드 뱀파이어 위켄드의 에즈라 코에닉과 함께 바로크 팝 요소를 받아들였고, 하이퍼팝 프로듀서 대니 엘과 함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비틀즈와 케미컬 브라더스를 섞어놓은 느낌이었는데, 제가 들었을 때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리암은 전통을 지향하지만 과거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영국의 한 매체는 최근 앨범을 "오아시스가 만든 적 없는 최고 앨범"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 동의하진 않지만, 리암이 공동 작업 방식을 거부했다면 이 정도로 멋진 결과물은 나올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인 투어를 이어가던 리암은 어느 날 네버스 평원에서 공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네버스는 오아시스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1996년, 오아시스의 콘서트 하나를 위해 20만 명이 넘게 모였던 바로 그곳이죠.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너는 지금 오아시스가 아닌데 거기를 어떻게 혼자서 채우냐?" 하지만 리암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롤링 스톤즈의 로버트 플랜트도 혼자서는 여기 못 채워. 근데 나는 할 수 있어. 나 아니면 프레디 머큐리가 여기 채우겠네."

결과는 완벽한 대성공이었습니다. 2022년 6월, 네버스 병원에 8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틀 동안 총 16만 명을 불러 모으며 리암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현실로 만들었죠. 저는 그 공연 영상을 보면서 런던 펍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이 음악은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라 한 세대의 정체성이라는 것을요.

오아시스 해체 이후 리암에게는 하락세만 남았을 거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나이 50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된 거죠.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무대에서 멋있고, 여전히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브 그롤은 리암 갤러거를 마지막으로 남은 록스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록스타라는 단어는 하나의 고유명사죠. 래퍼들조차도 스스로를 록스타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저는 록스타란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 가까이 삐딱하게 서서 노래하는 리암 갤러거에게는 "나는 록앤롤 스타고 너희를 졸라 재밌게 해줄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리암 갤러거의 재기는 단순히 한 뮤지션의 복귀를 넘어선 의미를 갖습니다. 실패하고 무너진 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그가 네버스에 선 순간은 록 음악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그의 노래를 들으면 런던의 흐린 날씨와 펍의 냄새, 사람들의 목소리가 함께 떠오릅니다. 리암 갤러거는 제게 단순한 록스타가 아니라 유럽이라는 공간의 공기와 연결된 음악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자기가 서 있어야 할 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I_rfgvqmRho?si=j_1m6cTxsT0Vhv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