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오랫동안 마이클 볼튼을 부모님 세대 가수로만 봤습니다. 중학교 때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발라드를 들으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 취향은 훨씬 빠르고 강한 음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전역 후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그의 노래를 제대로 듣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상하게도 그의 목소리가 그때는 다르게 들렸습니다. 그날 이후 유튜브로 그의 인생을 찾아봤는데, 그가 35세에 겨우 첫 히트곡을 낸 가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8년 동안 무명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마이클 볼튼은 1969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에픽 레코드와 계약을 맺으면서 음악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1987년이 되어서야 찾아왔습니다. 그 사이 18년 동안 그는 세차장 직원, 웨이터, CM송 가수로 생계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35세가 되어서야 락커에서 솔 가수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비로소 빛을 봤습니다.
18년 무명 시절, 실패의 연속과 생계 압박
마이클 볼튼은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1969년 에픽 레코드와 프로 계약을 맺었을 때 그와 그의 부모님은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비틀즈가 해체하기 1년 전이었던 그 시기, 음반 계약은 곧 성공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첫 싱글이 실패하자 계약은 곧바로 파기됐습니다. 그는 1년도 되지 않아 다른 곳과 계약해도 된다는 차가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후 소규모 음반사와 앨범 작업을 진행했지만 회사가 파산하면서 그 곡들은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일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이클은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했습니다. 세차장 직원, 식당 웨이터, 심지어 폴라 압둘의 베이비시터까지 했습니다. 폴라 압둘은 나중에 TV에 나와서 당시 마이클이 자신을 다정하게 돌봐주기보다는 항상 바빴다고 회상했습니다. 결국 마이클은 아파트에서도 쫓겨나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살았다고 본인이 직접 고백했습니다.
그가 음악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는 계속해서 누군가 그의 재능을 알아줬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종의 희망 고문이었던 셈입니다. 이번에는 뜰 것 같다는 기대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일이 계속됐습니다.
RCA와 솔로 음반 계약을 맺고 앨범을 냈지만 만 장 정도 팔리는 데 그쳤습니다. 세 딸의 아버지가 된 뒤에도 그는 음악을 놓지 않았습니다.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노래를 불렀고, 그 외에도 온갖 일거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아이들이 우는데 집에 이유식과 휴지를 살 돈조차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저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가끔 불안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볼튼의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제가 겪는 불안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느꼈습니다. 그는 35세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5세 데뷔, CM송 가수에서 소울 가수로
30대에 접어들면서 마이클은 CCM 성가수와 CM송 가수 일을 시작했습니다. CM송은 돈 없는 가수들의 희망이라고 불릴 만큼 수입이 괜찮았습니다. 마이클은 손에 잡히는 대로 CM송을 불렀고, 월급쟁이 작곡가로도 활동하며 가장으로서 어깨를 펼 수 있었습니다.
스타는 아니었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안정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안정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음반 계약을 맺고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가 맺은 여섯 번째 음반 계약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예명을 마이클 볼로틴에서 마이클 볼튼으로 바꿨습니다. 서른 살에 발매한 마이클 볼튼 1집은 또다시 실패했습니다. Fool's Game이라는 곡이 잠깐 순위에 올랐지만 금방 사라졌습니다. 2년 뒤 발매한 Feels Crazy도 아무도 미치지 않는 곡이었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계약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콜롬비아 레코드가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이클에게 네가 남에게 주려고 만든 곡들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데모를 듣고 이 목소리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콜롬비아 레코드는 그에게 락 음악을 계속하면 그 재능이 묻힐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기타와 드럼 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가려진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그의 최고 무기가 목소리이니 자신이 쓴 발라드를 직접 부르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방향 전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마이클은 수십 년 동안 락 음악을 고집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35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진짜 강점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가 회수한 곡 중 하나가 바로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였습니다.
저는 군대 전역 후 카페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묘하게 감정이 흔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배경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렴이 시작되는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찾아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었습니다.
대학교 시절에는 이런 발라드를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모일 때는 신나는 음악이나 최신 팝송을 틀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듣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때 마이클 볼튼의 노래가 이상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방향 전환 후 성공, 소울의 제왕이 된 마이클 볼튼
마이클 볼튼은 자신이 남에게 주려고 만든 곡들을 직접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가수에게 준 곡도 회수해서 불렀습니다. 그의 성공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는 1989년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이 곡은 원래 로라 브래니건에게 준 곡이었지만 마이클이 다시 불러서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3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첫 히트곡을 냈습니다.
마이클의 목소리는 묘한 특징이 있습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지만 감정이 진하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으면 마치 오래된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그의 노래가 조금씩 더 이해된다는 걸 느낍니다.
예전에는 단순한 발라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노래 속 감정이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마이클 볼튼은 락커에서 소울 가수로 전향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진짜 색깔을 찾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기타와 드럼 소리에 묻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곡의 중심에 섰습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늦은 밤에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일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이클 볼튼의 노래가 나오면 묘하게 분위기가 차분해집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 남는 목소리입니다.
마이클 볼튼의 노래는 1990년대 발라드의 상징입니다. 그의 보컬은 극적입니다. 작은 감정도 크게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과장된 느낌일 수 있지만 바로 그 과장이 발라드의 매력입니다. 그는 결국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음악을 만든 가수였습니다.
그가 35세에 데뷔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격언을 그가 몸소 증명했습니다. 그는 18년 동안 실패했지만 결국 자신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마이클 볼튼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의 방향이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성공이 늦어진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인생이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이클 볼튼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격언도 증명했습니다. 수많은 비난을 견뎌내고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순히 옛날 발라드 가수가 아니라 제가 조금씩 어른이 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하게 된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