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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 사일러스, 팝스타에서 록스타가 되다. (디즈니, 방황, 산불)

by oasis 2026. 2. 25.

팝의 디바, 마일리 사일러스

 

술집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 있으신가요? "이 사람, 진짜 많이 변했네." 저는 홍대 작은 공연장에서 밴드 합주를 마치고 동료들과 맥주를 기울이다가 그런 순간을 맞았습니다. 누군가 틀어놓은 마일리 사이러스의 'Flowers'를 다 같이 따라 부르는데, 생각보다 모두가 가사를 알고 있더군요. 한나 몬타나 시절의 발랄한 소녀에서 시작해, 온갖 논란을 거쳐, 결국 자기 목소리를 찾은 록 아티스트까지. 그녀의 변화는 단순한 이미지 변신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디즈니 이미지와의 싸움, 그 시작은 순결 반지였을까

순결 반지를 끼고 무대에 섰던 십대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과 싸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마일리 사이러스는 한나 몬타나로 전 세계 청소년의 우상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이미지 안에서 숨이 막혔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순수한 소녀를 연기해야 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또래 친구들처럼 연애도 하고 실수도 했습니다. 남자친구와의 첫 관계 후 겪은 혼란, 대마 흡연 논란 같은 것들이 터져 나왔을 때,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꼈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한 성장 과정 아니었을까요?

저는 부산 여행 중 바닷가 카페에서 우연히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혼자도 괜찮지." 그 가사가 주는 힘은 과거의 마일리로서는 절대 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옭아매던 한나 몬타나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돈트 터치 미 어게인' EP를 내놓으며 변화를 예고했고, '파티 인 더 USA'로 16세의 솔직한 감성을 담아냈습니다. 리암 헴스워스와 함께한 영화 '더 라스트 송'은 배우로서의 새로운 시도였지만, 결과는 녹록지 않았습니다.

반항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앨범을 냈을 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한나 몬타나의 상큼함을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했고, 비평가들은 "이미 흔한 콘셉트"라며 차갑게 평했죠. 그녀의 앨범은 커리어 최초로 빌보드 1위 데뷔에 실패했고, 한나 몬타나 사운드트랙마저 흥행에 실패하며 연쇄 타격을 입었습니다. 연기로 전향하려던 계획도 남자친구와의 사진 유출로 인해 '몬스터 호텔' 캐스팅에서 돌연 하차하면서 무산되었습니다. 모든 문이 닫히는 듯했던 그 시기,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뱅어즈와 논란, 그리고 자기 색깔을 찾지 못한 방황

살아남기 위해서는 확실한 한 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마일리는 RCA 레이블과 손잡고 음악에 다시 올인했습니다. 닥터 루크, 퍼렐 윌리엄스, 마이크 윌 같은 최고의 프로듀서들과 작업한 '뱅어즈'는 말 그대로 모든 곡이 명곡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앨범에서 나온 '위 캔트 스톱'과 '레킹 볼'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대표곡으로 꼽힙니다. 특히 '레킹 볼' 뮤직비디오의 파격적인 연출은 마일리의 퇴폐미를 극대화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죠.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와 싱글 차트 모두 1위를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디즈니 스타에서 파격적인 팝스타로의 변신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그녀를 과한 행동으로 몰고 간 것이죠. MTV VMA에서 로빈 시크와 함께 선보인 트월킹 무대는 많은 논란을 낳았고, 비평가들은 "진부하다"며 비난했습니다. '뱅어즈'로 쌓은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후 5집에서는 히피 문화에 심취해 사이키델릭 팝을 시도했지만, 평단의 반응은 "흉내만 낼 뿐 자기 색깔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기의 마일리를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그녀는 분명 뭔가를 찾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본인도 명확히 모르는 것 같았거든요. 6집에서 컨트리로 돌아와 '말리부' 같은 히트곡을 냈지만, 여전히 음악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장르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찾을 수 없다는 걸, 그녀도 깨닫고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와 청소년 노숙자를 위한 '해피 히피 재단'을 설립하며 사회 활동을 펼쳤고, 2008년부터 유튜브를 시작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에 출연해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뱅어즈' 감성의 EP 3부작을 준비하던 중 그녀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산불이 가져온 재탄생, 록스타 마일리 사일러스의 완성

산불로 모든 것을 잃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집, 작업물, 일기장까지 모두 소실되었을 때 마일리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백업본이 발견되어 'She Is Coming'이 발매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이 사건을 단순한 불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놓지 못했던 무언가를 털어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고 고백했죠. 시련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전환점이 된다는 걸, 그녀는 몸소 증명했습니다.

산불 이후 마일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뱅어즈' 시절로 돌아가는 대신, 80년대 록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2년간 새 앨범 작업에 몰두하며 글래스톤베리 무대에서 팝곡을 록으로 편곡한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변화를 예고했죠. 그리고 마침내 2020년 12월 27일, 7집 앨범 '플라스틱 하츠'가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마일리의 중저음 보컬이 록 장르와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보이시한 스타일 역시 추구하는 음악과 찰떡궁합이었고, 비평가들은 "80년대 록을 제대로 해석했다", "드디어 마일리가 자신의 색을 찾았다"며 극찬했습니다. 록의 전설적 포토그래퍼 미크 록 하딘이 앨범 커버에 참여했고, 스티비 닉스, 조안 제트, 빌리 아이돌 같은 80년대 전설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해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앨범 마지막에는 존경하는 여성 록커들의 곡을 라이브 버전으로 수록하며 섬세한 존경심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이번 앨범 스타일은 70, 80년대 펑크 아이콘 블론디의 보컬 데비 해리를 연상시킵니다. 금발 머리와 세련된 스타일로 유명했던 데비 해리는 마일리에게 음악적으로나 스타일적으로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플라스틱 하츠'를 들으며 블로그에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마일리는 성장 서사를 몸으로 증명했다."

그녀의 보컬은 거칠고 허스키합니다. 완벽한 발성보다는 감정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Flowers'에서 보여준 자립적인 메시지는 과거 순결 반지를 끼던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디즈니 아이돌에서 힙합 악동, 사이키델릭 히피, 컨트리 송라이터를 거쳐 마침내 록스타로 완성된 그녀의 여정은 누군가에게는 어그로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그것이 진심 어린 도전이었다고 믿습니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모든 파편들이 하나의 궤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반항, 방황, 그리고 재정의. 그녀는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법을 아는 아티스트입니다. 자신을 소비하는 산업 속에서도 자신의 서사를 다시 쓰는 데 성공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언가를 바꾸고 싶지만 두려움에 멈춰 있다면, 마일리의 이야기가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변화는 한 번에 오지 않지만, 멈추지 않으면 결국 도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RT7uzFIXoXc?si=tIlfLpg0qK7LqRi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