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면 저는 늘 바운디의 '踊り子'를 틀었습니다. 대학 시절 일본 문화 동아리 친구가 추천해준 곡이었는데, 그땐 그냥 감성적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 다시 들으니 전혀 다르게 들렸습니다. 도시의 밤, 네온사인, 혼자 걷는 골목의 고독이 묘하게 위로가 됐습니다.
바운디는 본명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음악으로만 자신을 증명하는 아티스트입니다. 2000년생, 도쿄 출신의 이 싱어송라이터는 록, 발라드, 팝, 랩을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일본 음악계에서 장르 불문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데뷔 약 7년 만에 4대 돔투어를 앞두고 있는 그의 행보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J-POP의 새로운 표준을 써 내려가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바운디의 익명 철학
바운디가 본명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음악 그 자체로 기억되고 싶다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신념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뷰나 미디어에서도 본명은 베일에 싸인 채로 유지되며, 작품으로만 평가받겠다는 스탠스를 고수합니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그의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바운디라는 예명의 유래도 흥미롭습니다. 중학교 건강 검진 때 사람과 부딪혀 벽에 튕겨나간 모습에서 친구들이 붙인 별명이 '바운드볼'이었고, 여기서 바운드에 임팩트를 더하기 위해 B를 V로 바꿔 바운디가 탄생했습니다.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둔 네이밍이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의 음악은 일본을 넘어 글로벌 팬들에게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익명성이 단지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계속 듣다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바운디는 자신의 개인적인 서사보다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에 집중하길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젊은 세대의 번아웃 이야기를 보고 집에 와서 그의 음악을 틀어놓고 누워 있었는데, 묘하게 위로가 됐습니다. "괜찮아,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라는 말 대신 음악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환경에 둘러싸여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재즈와 하와이 음악을 클럽에서 부르는 가수였고, 외할아버지도 재즈 뮤지션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그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노래하는 성우가 되는 꿈을 키웠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인터넷에서 니코니코 동화를 발견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약 4년간 우타이테로 활동하며 보컬로이드 곡 커버 영상을 올렸고, 이 시기를 통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기술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는 자신의 음악적 수준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더 크리에이티브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유이, 아야카 등을 배출한 음악원 보이스에 입학했고, 이후 2019년에는 니혼대학 예술학부 디자인 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창작의 모든 것은 디자인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으로 시각 예술을 전공한 그는 대학 1학년 때 '음악은 디자인적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회고합니다.
레플리카 개념
바운디 음악 철학의 핵심은 '레플리카'라는 개념입니다. 그는 빌보드 재팬 인터뷰에서 "모두가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레플리카의 내력에서 태어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구가 둥글고 그 주위를 여러 지층이 덮고 있듯이, 원점에 대해 여러 요소가 지칭되어 점점 커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레플리카는 탑스이며, 더 좋은 레플리카를 만드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철학은 요네즈 켄시의 2017년 앨범 '부트레그'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둘 다 순수한 오리지널은 불가능하며, 영향의 변형과 존중에서 예술성이 탄생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바운디도 "요네즈 켄시 씨는 틀림없이 제 음악사에서 뺄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니코니코 동화 출신, 멀티 아티스트라는 공통점 외에도 앨범 철학에서의 이런 유사성은 그가 음악적 선배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당당히 인정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바운디는 '천재'라는 호칭을 거부합니다. 라디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재였다면 싱어송라이터 안 했을 거다. 천재는 세상에 나오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서 말하는 천재는 대부분 수재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되는 건 없고, 뭔가를 해온 사람들이죠. 수재라고 불리는 게 가장 기쁩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학습을 통해 이룬 성과를 강조하며, 자신이 쌓아온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겸손함이 돋보입니다.
저는 이 레플리카 개념이 현대 크리에이터들에게 정말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독창성에 집착하지만, 사실 모든 창작은 과거의 영향 위에 서 있습니다. 바운디는 그걸 숨기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인정하면서, 더 나은 버전을 만드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그의 음악을 더 진정성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2023년 11월 발매한 앨범 '20 레플리카'는 그의 이런 철학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2CD, 35곡, 약 두 시간 분량의 대작으로 디스크 1에는 신곡 15곡이, 디스크 2에는 기존 디지털 싱글 20곡이 수록됐습니다. 바운디는 이 앨범을 자신의 '졸업논문'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대학 졸업 작품이 앨범 패키지 디자인의 원형이 됐다고 합니다. 레플리카라는 개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의 창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입니다.
바운디의 원맨 프로덕션 체제도 이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CD 재킷 디자인, 로고, 아티스트 사진 촬영, 뮤직비디오 기획까지 직접 수행하며, 니혼대학 예술학부 디자인 학과에서 배운 것들을 음악 활동 전반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개인 스튜디오에서 드럼 마이킹부터 레코딩까지 혼자 진행하는 철저한 독립성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통제권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줍니다.
4대 돔 투어
2026년 2월과 3월, 바운디는 후쿠오카 페이돔, 도쿄돔, 오사카돔, 삿포로돔을 도는 4대 돔투어를 앞두고 있습니다. 총 7회 공연으로 일본 남성 솔로 아티스트 역대 최연소 4대 돔투어 달성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세울 전망입니다. 데뷔 약 7년 만에 이룬 성과로, 그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정표입니다.
바운디의 성공은 2019년 11월 발매한 첫 디지털 싱글 '도쿄 플래시'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스트리밍 추천 알고리즘에서 인기곡들의 공통 코드 진행을 분석해 의도적으로 '저스트 투 오버스' 진행을 활용한 곡을 만들었고, 이 곡은 2개월 만에 100만 회를 돌파하며 스포티파이 재팬 바이럴 차트 탑 3에 2주 연속 랭크됐습니다. 이 성공으로 2020년 1월 스포티파이 '얼리 노이즈 2020'에 후지이 카제, 카미야마 요우, 리나 사와야마 등과 함께 선정되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습니다.
2022년 9월에는 일본 무도관에서 단독 공연 '심호'를 개최해 데뷔 약 3년 만에 무도관에 입성했고, 15만 명이 넘는 응모자 중 총 26,000명이 관람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31일에는 NHK 홍백가합전에 첫 출연해 백팀에서 '괴수의 꽃노래'를, 홍팀에서는 밀레, 이쿠타 리라와 함께 '오모카게'를 공연했습니다. 특히 '괴수의 꽃노래' 무대에서 외친 "그 정도야 홍백 갈 수 있지. 가자 일본!"은 자신감 넘치는 아티스트의 선언처럼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024년 11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진행된 아레나 투어 '퓨전'은 10개 도시 20회 공연, 총 28만 명 동원, 전석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2025년 1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는 이틀간 7만 6천 명을 동원하며 SSA 역사상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습니다. 저는 이 기록을 봤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데뷔 몇 년 만에 이런 규모의 공연을 매진시킨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일본 음악 시장에서 그의 위치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운디의 애니메이션 타이업 활동도 그의 대중적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 노래하는 성우를 꿈꿨던 게 다른 방식으로 실현된 것이죠. 2022년에는 '랭킹 오브 킹스' 오프닝 '벌거벗은 용사', '체인소맨' 1화 엔딩 '체인소 블러드'를 담당했고, 2023년에는 '스파이 패밀리' 시즌 2 엔딩 '토도의 일격', 2024년에는 영화 '도라에몽' 테마곡 '타임 파라독스', 2025년에는 '사카모토 데이즈' 오프닝 '달려라 사카모토'까지 유명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주제곡을 연달아 담당하며 쉴 틈 없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바운디의 '괴수의 꽃노래'는 빌보드 재팬 역사상 네 번째로 10억 회 스트리밍을 돌파했고,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최연소 1억 회 돌파 기록입니다. 1억 회 재생 돌파곡만 17곡으로 일본 솔로 아티스트 중 현재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치들은 단순한 인기를 넘어, 그의 음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소비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운디는 장르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아티스트입니다. 록, R&B, 일렉트로닉, 시티팝의 흔적까지 그의 음악 안에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2020년 5월 데뷔 앨범 '스트로보'는 시티팝, 록, R&B,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가 한 앨범 안에 공존하며 그의 장르 횡단적 정체성을 선언한 작품이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균형감각입니다. 실험적이지만 과하지 않고, 대중적이지만 진부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대의 감각을 정확히 포착하며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면서도 그 안에 현대인의 공허함을 섞어 넣습니다.
저는 바운디가 일본 대중음악의 현재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도 자신의 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는 단순한 히트메이커를 넘어섭니다. 그는 "여러 음악 장르가 있다면 모든 통로에 내가 있다. 여러 연결을 하나로 만드는 게 팝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나는 각 장르의 허브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언젠간 내가 늙었을 때 거기에 불만을 말하는 아이들이 나보다 뛰어나면 된다. 언제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아이들이다. 늙은 이는 초석이 되는 게 일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레플리카인 거다"라며 미래 세대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습니다.
철저히 익명을 유지하면서도 작품으로 존재감을 증명하고,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선배 아티스트로서의 영향을 당당히 인정하면서 자신만의 레플리카를 만들어가는 바운디. 데뷔 7년 차에 돔투어를 앞둔 25세의 이 청년은 '더 좋은 레플리카를 만드는 것이 제일'이라는 철학으로 J-POP 시대 제2의 새로운 표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직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퇴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한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세련된 고독이, 묘하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