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이름 때문에 소송 위기에 몰렸던 팀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뱅글스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저는 주말 오후 창문으로 햇살이 길게 들어오던 날 "Eternal Flame"을 들으며, 이 밴드가 겪었던 우여곡절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 뒤에 숨은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인간적이었거든요.
레스토랑 냅킨에서 탄생한 밴드명 뱅글스
1980년 겨울, LA 지역 잡지에 실린 밴드 구인 광고 하나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비틀스, 버즈, 버팔로 스프링필드를 좋아하는 밴드 멤버 구함." 수잔나 호프스가 낸 이 광고를 보고 데비 피터슨과 비키 피터슨 자매가 연락을 했고, 전화로 존 레논의 죽음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눈 끝에 의기투합했습니다.
처음 밴드명은 '더 뱅스'였습니다. 60년대 여성들의 뱅 헤어스타일에서 착안한 이름이었죠.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부 지역에서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던 밴드가 법적 조치를 예고한 겁니다. 데뷔 앨범 녹음 전날이었습니다.
멤버들은 며칠간 머리를 싸매고 새 이름을 고민했습니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던 중, 누군가가 냅킨에 'Bangless(뱅이 없는)'이라고 휘갈겨 썼습니다. 거기서 하이픈과 S 하나를 빼니 'Bangles'가 되었죠. 저는 이 일화를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세계적인 밴드의 이름이 이렇게 즉흥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니 말입니다.
1982년 6월, '더 뱅글스'라는 이름으로 첫 EP가 나왔습니다. 데뷔 싱글은 "한때 더 뱅스였던"이라는 문구와 함께 재발매되었고요. MTV가 사세 확장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 매력적인 비주얼을 가진 이들을 외면할 리 없었습니다. 'The Real World' 뮤직비디오를 통해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무명 밴드임에도 아메리칸 밴드스탠드에 출연하는 행운을 거머쥐었습니다.
프린스가 만든 월요일의 우울
1986년, 뱅글스의 두 번째 앨범 'Different Light'가 나왔습니다. 첫 싱글은 'Manic Monday'였죠. "미쳐버릴 것 같은 월요일 아침, 오늘이 일요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 노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1986년 4월 19일 차트 2위까지 올랐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곡의 작곡가였습니다. 바로 프린스였죠. 그는 당시 앨범 크레딧에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Under the Cherry Moon'의 역할명인 '크리스토퍼'를 가명으로 썼습니다. 원래는 1984년 자신이 기획한 걸그룹 아폴로니아 식스를 위해 만든 곡이었는데, 결과물이 신통찮자 뱅글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더 재미있는 건, 'Manic Monday'가 빌보드 2위에 올랐을 때 1위 곡이 프린스의 'Kiss'였다는 점입니다. 프린스는 빌보드 1위와 2위에 자신의 작품을 동시에 올린 역사상 다섯 번째 작곡가가 되었죠.
같은 앨범에 수록된 'Walk Like an Egyptian'은 뱅글스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1986년 12월 20일 빌보드 1위에 올라 4주 연속 정상을 지켰고, 1987년 빌보드 연말 결산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저는 이 곡의 제작 과정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트로의 경쾌한 쉐이커 사운드가 사실 쉐이커가 아니라 종이로 만든 강아지 인형을 흔든 소리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거든요. 녹음실 복도에 있던 인형 안에 콩이 들어 있었는데, 프로듀서가 그걸 한참 흔들어 보더니 녹음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수잔나 호프스를 둘러싼 균열
1988년 세 번째 앨범 'Everything'이 발매되었습니다. 'In Your Room'이 빌보드 5위로 무난한 출발을 알린 가운데, 'Eternal Flame'이 공개되었죠. 이 곡은 1989년 4월 1일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한 주만 정상을 지켰지만, 영국을 비롯한 아홉 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사실상 뱅글스 최고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성공이 밴드 내부에 균열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수잔나 호프스가 작곡에 참여한 이 곡은 처음에 밴드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되었습니다. 프로듀서의 고집으로 결국 수록되었는데, 다른 멤버들이 반대했던 노래가 대박을 치자 갈등이 불거졌죠.
사실 이 갈등은 내부보다 미디어의 호들갑에 의해 증폭되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수잔나 호프스를 리드 보컬로 소개하고, 아예 '수잔나 호프스와 뱅글스'라 부르며 그녀만을 부각시킨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불균형은 정말 팀워크를 무너뜨립니다. 함께 만들어온 결과물인데 한 사람만 조명받으면, 나머지는 배경으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게 되거든요.
데뷔 이래 작곡과 보컬을 분담한다는 원칙을 지켜온 멤버들에게 이런 관심의 불균형은 큰 불만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실제 히트곡들은 외부 작곡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까지 받자, 멘탈이 나가버린 멤버들은 인기 절정이던 1989년 진행 중이던 투어를 취소하고 갑자기 밴드를 해산해 버렸습니다.
10년 뒤인 1999년, 영화 '오스틴 파워: 스파이 후 닥터'에서 뱅글스의 신곡 'Get the Girl'이 삽입되며 재결성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영화 감독이 수잔나의 남편이었고, 계속 연락하던 데비와 수잔나가 비키와 마이클을 설득한 결과였죠. 2000년부터 재결성 투어를 시작했고, 2003년과 2011년에는 4집과 5집을 발매했습니다.
괜히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끝난 인연인데도 멜로디 한 줄에 마음이 흔들리는 경험 말입니다. 뱅글스의 노래는 밝고 경쾌한데, 그 안에 묘한 쓸쓸함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지금도 들립니다. 60대가 된 그들이 여전히 무대에 서는 이유도, 어쩌면 그 안에 남아 있는 작은 불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지만, 마음 한쪽은 늘 조금씩 흔들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