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립싱크 밴드가 디스코의 레전드가 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립싱크는 가수로서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보니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상식이 흔들립니다. 저는 영화 써니를 통해 보니엠의 'Sunny'를 처음 접했고, 그 순간 이 곡이 명곡임을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비트와 멜로디 모두 찬란했던 과거를 추억한다는 영화의 주제와 완벽하게 어울렸습니다.
그러다 부모님이 틀어놓은 'Rasputin'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촌스럽다 생각했지만, 여행 가는 차 안에서 다 같이 따라 부르고 있더군요. 동아리 MT에서 장난처럼 이 곡을 연주했는데 제일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때 제 블로그에 이렇게 썼습니다. "흥은 세대를 건넌다."
프랭크 파리안의 기획, 보니엠 탄생 비화
보니엠은 처음부터 철저히 계산된 프로젝트였습니다. 1973년, 독일의 TV 쇼 무대에 섰던 프랭크 파리안은 10년 가까이 팝 가수로 활동했지만, 어정쩡한 성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70년대 중반부터 떠오르는 디스코 장르에 눈길을 돌렸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평가는 좋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이미 백인 팝 가수로 활동하던 자신이 무대에서 이런 음악을 부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전달할 가짜 밴드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보니엠이라는 이름은 우연히 TV에서 본 '보니'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즉석에서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혼자 보니 보니 보니 M, 뒤에 알파벳을 붙여보니 어감이 좋아서 바로 확정했다고 합니다. 첫 곡 'Baby Do You Wanna Bump'는 프랭크가 저음과 고음 파트를 직접 녹음했고, 처음엔 별 반응이 없다가 벨기에와 네덜란드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이제 무대에 오를 밴드를 구성해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섭외된 멤버는 모델 출신의 메이지 윌리엄스였습니다. 그녀는 영국령 몬세라트 출신으로, 서독의 한 레스토랑에서 에이전트의 제안을 받아 보니엠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 멤버 교체를 거쳐 바비 패럴, 리즈 미첼, 마르샤 바렛, 메이지 윌리엄스로 구성된 우리가 기억하는 보니엠의 라인업이 완성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음악 그룹이라고 하면 멤버들이 직접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지만, 보니엠은 달랐습니다. 실제 앨범에는 리즈 미첼과 마르샤 바렛의 목소리만 들어갔고, 바비 패럴의 파트는 다시 프랭크의 목소리로 채워졌습니다. 메이지 윌리엄스는 아예 녹음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디스코의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바비 패럴의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
1976년 9월 18일, 독일의 음악 쇼 '무지카덴'에 보니엠이 출연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데뷔 앨범의 첫 싱글 'Daddy Cool'은 그날 방송이 나간 뒤 독일 차트 1위에 올랐고,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65위까지 올랐습니다. 노래 자체도 중독적이었지만, 사람들을 진짜로 사로잡은 건 바비 패럴의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카리브해 남부 아루바 태생인 바비 패럴은 해군 복무를 마친 뒤 노르웨이로 이주했고, 네덜란드를 거쳐 독일로 건너가 클럽 디제이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남다른 카리스마와 춤 실력으로 클럽가에서 인기를 끌었고, 바로 그 에너지가 보니엠의 무대를 완성시켰습니다. 무대에 급히 오르느라 막춤을 췄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디제이 시절부터 선보이던 퍼포먼스였습니다. 노래 실력이 부족했음에도 그가 멤버로 영입된 이유이자, 팀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TV에서 보니엠이 나오면 바비 패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흉내를 내며 놀면 누나와 형들이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적으로 립싱크 가수는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받지만, 제 경험상 바비 패럴의 무대는 그런 비난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퍼포먼스는 단순히 입 모양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였습니다.
70년대 중반 이후 유럽 디스코 시장에서는 실제 노래를 부른 가수와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청중들도 어느 정도 이를 이해하고 있었고, 누가 노래를 부르건 노래가 좋고 퍼포먼스가 화려하면 그것에 더 점수를 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실제 라이브에서 바비와 메이지는 직접 노래를 불렀고, 백 밴드와 백 보컬을 활용한 사운드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써니와 라스푸틴, 시대를 넘는 명곡들
보니엠의 음악은 단순히 흥겨운 디스코를 넘어섰습니다. 그들의 두 번째 싱글 'Sunny'는 1966년 바비 헤브가 발표해 빌보드 2위까지 오른 곡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곡 중 하나입니다. 보니엠이 부른 'Sunny'는 그 많은 버전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영화 써니 덕분에 보다 폭넓은 세대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제가 써니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옛날 노래를 즐겨 듣던 저로서는 한 번에 명곡임을 깨달았습니다. 비트와 멜로디가 찬란했던 과거를 추억한다는 영화의 주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리메이크 곡은 원곡을 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보니엠의 'Sunny'는 원곡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78년에 발매된 세 번째 앨범에는 'Rivers of Babylon'과 'Rasputin'이 수록되었습니다. 'Rivers of Babylon'은 성경의 시편을 인용하여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곡입니다. 원곡은 1970년 더 멜로디언스가 발표한 것으로, 자메이카의 라스타파리 관점에서 바빌론은 억압적이고 부당한 정치 체제를 뜻했습니다. 보니엠은 레게풍의 원곡을 다소 아련한 디스코로 바꿨고, 이 곡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영국에서만 200만 장이 판매되어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 7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Rasputin'입니다. 이 곡은 러시아 제국의 몰락에 일조한 역사적 인물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생애를 들려주는 노래로, 당시 소련을 비롯한 공산 국가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공산국가 치하에서 살던 사람들의 체제에 대한 반발심과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보니엠의 중독적인 리듬과 결합된 것이 인기의 비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소련에서 발매될 때 삭제되었고, 1978년 러시아 투어 때도 이 곡은 제재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이 틀어놓은 'Rasputin'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촌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행 가는 차 안에서 이 곡을 들으니 모두가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동아리 MT에서 장난처럼 이 곡을 연주했는데, 의외로 제일 반응이 좋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옛날 노래는 지루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 경험상 보니엠의 음악은 세대를 뛰어넘는 흥을 담고 있었습니다.
보니엠의 음악은 미국의 전설적인 범죄자, 아일랜드의 내전, 바빌론의 포로들, 러시아 제국주의까지 다뤘습니다. 프랭크 파리안의 음악적 세계관은 단순히 춤추기 좋은 노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디스코라는 형식 안에 역사와 문화,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냈고, 그것이 보니엠을 단순한 립싱크 밴드 이상으로 만들어준 요소였습니다.
보니엠은 1986년 해산을 발표했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파티에서 울립니다. 프랭크 파리안은 보니엠을 시작할 때 딱 10년짜리 프로젝트로 구상했다고 합니다. 한 장르가 아무리 인기를 얻어도 5~6년이 지나면 새로운 흐름에 밀려나기 마련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의 예상대로 디스코의 시대는 저물었고, 보니엠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바비 패럴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었습니다. 그는 앨범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팀 해산 이후 수입이 끊겼고, 초상권과 로열티 등 모든 권리를 프랭크 파리안에게 넘긴 뒤에도 여의치 않아 네덜란드로 이주해 복지 연금으로 생활했습니다. 상표권이 등록되지 않은 국가를 다니며 공연을 했지만, 술과 스트레스, 잦은 여행이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결국 2010년 12월 30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호텔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립싱크 가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보니엠의 음악은 그런 비난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두 명의 멤버가 실제로 노래를 불렀고, 라이브에서는 전원이 노래를 불렀으며, 무엇보다 바비 패럴의 뜨거운 가슴이 전해지는 퍼포먼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반드시 깊어야만 오래 남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니엠은 증명했습니다. 흥은 세대를 건넌다는 제 블로그 글처럼, 보니엠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