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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 Z세대가 노래하는 법 (사운드클라우드, 불안, 진화)

by oasis 2026. 3. 7.

21세기 최고의 영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

저는 빌리 아일리시를 처음 제대로 들었을 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군 전역 후 복학을 준비하던 스무 살 후반 초입이었는데, 유튜브가 'bad guy'를 띄워줬고 틀어봤더니 너무 조용했습니다. 너무 건조했고, 제가 알던 팝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이어폰을 끼고 앨범 전체를 들어보니 그 속삭임 같은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제 머릿속 생각과 닮아 있었습니다. 취업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태도까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빌리 아일리시는 작게 말하는 법으로 세계를 장악한 인물이라는 것을요.

빌리 아일리시는 학교를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습니다. 배우 출신 부모님 아래서 홈스쿨링으로 자랐고, 여섯 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여덟 살에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고, 열한 살에 작곡을 시작하면서 부모님의 열렬한 지원 아래 음악적 재능을 키워갔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강력한 음악적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바로 네 살 위 친오빠 피니어스입니다. 이 남매의 케미스트리가 2015년, 한 곡을 탄생시키면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시작된 베드룸 팝 혁명

피니어스는 10대 때부터 밴드 생활을 하며 곡을 쓰고 있었습니다. 당시 빌리는 여덟 살 때부터 댄스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댄스 선생님이 자신의 안무를 위한 곡을 하나 부탁했다고 합니다. 피니어스는 원래 자신의 밴드를 위해 써놨던 'Ocean Eyes'를 여동생의 목소리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빌리에게 부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는데, 2주 만에 몇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습니다.

이 시점에서 베드룸 팝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베드룸 팝은 조악한 로파이 사운드가 하나의 미학으로 받아들여진 이후 생겨난 흐름입니다. 2010년대 이후 홈 레코딩 기술이 발달하면서 집에서도, 심지어 침대에서도 로파이 기술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빌리와 피니어스 또한 집에서, 침대에서 수많은 곡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베드룸 팝 뮤지션들이 생겨나면서 메이저 레이블들의 구애를 받게 되었고, 빌리 아일리시는 랩이 없는 최초의 사운드클라우드 팝스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빌리에게 시련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열한 살 때 투렛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댄스 수업을 받던 도중 성장판 부상을 당하면서 춤을 못 추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신체 이형 장애까지 겹치면서 거울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빌리의 성향 때문에 달라붙는 옷을 꺼리고 박시한 오버핏을 고집하게 되었는데, 후에 이것이 빌리 아일리시 고유의 패션을 상징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우울과 불안은 빌리의 음악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사운드클라우드로 큰 주목을 받은 빌리는 2016년 8월, 메이저 레이블 인터스코프 산하 레이블 '더 다크 룸'과 계약을 하게 됩니다. 더 다크 룸에서는 빌리를 스트리밍 시장에 맞춘 새로운 팝스타로 만들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빌리 또한 여러 기믹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쓰게 되었고, 이 전략은 Z세대를 중심으로 제대로 먹혀들어갔습니다. 2017년 8월 발매한 EP 'Don't Smile at Me'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면서 빌리의 데뷔 앨범에 큰 기대를 모으게 만들었습니다.

Z세대의 불안을 속삭임으로 담아낸 빌리 아일리시

저는 대학교 수업 끝나고 카페에서 혼자 과제하던 날, 'when the party's over'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던 기억이 납니다. 주변은 시끄러운데 저는 혼자 조용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빌리의 음악은 괜찮은 척하는 세대의 배경음악 같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록처럼 크게 외쳤다면, 20대 중반의 저는 속으로만 웅얼거렸습니다. 그 웅얼거림을 대신 말해준 사람이 빌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둡고 우울한, 심지어 기괴하기까지 한 빌리 아일리시는 어떻게 Z세대들의 아이콘이 되었을까요? Z세대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면서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게 특징입니다.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SNS와 유튜브를 많이 하고 이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로 인해 Z세대들은 고립되고 점차 개인의 불안이 높아지면서 내면의 병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Z세대들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인종 간의 갈등과 혐오가 만연해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인해 세상과 고립되기 시작하면서 내면적인 불안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빌리 아일리시는 이 Z세대들의 위기에 혜성같이 나타난 팝스타였습니다. 이 세대들과 같이 자라 불안과 우울을 겪었고, 다른 틴에이지 팝스타처럼 애써 밝은 척하기보다는 이 불안과 우울을 대놓고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ASMR처럼 속삭이듯이 청각을 자극합니다. 프로덕션의 의도도 있지만 빌리의 음악들은 스피커로 듣기보다는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최적화된 음악입니다. 이 속삭이는 듯한 빌리의 창법은 스피커로 듣기보다는 이어폰이 더 와닿습니다. 팬데믹 기간 모두 집에 갇혀 고립된 시기에 빌리가 속삭이는 우울과 불안은 Z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2019년 3월, 이렇게 빌리 아일리시가 Z세대들의 아이콘이 되게 한 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이전에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빌리는 새로운 팝스타의 탄생을 기다렸다는 듯 빌보드 차트, UK 차트 등 6개 차트 동시에 1위를 석권했습니다. 게다가 2000년 이후 태어난 뮤지션으로 최초로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오른 최연소 아티스트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때 빌리 아일리시의 나이는 17살에 불과했습니다.

하나의 장르에 갇히기 싫어했던 빌리는 이 앨범에 팝과 전자음악 시대에 오히려 다양한 장르 기반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될 수 있었고, 이것이 플레이리스트 중심의 스트리밍 시대에는 앨범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속삭이는 듯한 ASMR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 친오빠 피니어스 프로덕션 아래 유독 강조된 베이스, 미니멀하고 어쿠스틱한 사운드, 힙합에 영향을 받은 프로듀싱이 조합되면서 큰 시너지 효과를 냈습니다.

앨범을 거듭할수록 성숙해지는 음악적 진화

빌리 아일리시는 작게 말하는 법을 통해 팝의 권력을 재정의한 인물입니다. 대부분의 팝이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선명하게를 외칠 때, 그녀는 속삭임으로 세계를 장악했습니다. 데뷔 앨범은 공포와 불안, 자기혐오와 냉소를 팝의 문법 안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녀의 음악은 미니멀합니다. 여백이 많고, 베이스는 낮게 웅웅거립니다. 그 위에 얹히는 목소리는 거의 비밀을 털어놓는 톤입니다. 이 친밀한 방식은 청자를 공범처럼 만듭니다. 우리는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엿듣는 느낌을 받습니다.

상당히 어둡고 우울한 음악과 슬픔, 중독, 불안 등의 가사를 담았는데, 곡마다 캐릭터를 만들어내 허구적인 이야기를 담아 공포와 유머를 적절히 섞으면서 풀어냈습니다. 17살의 빌리 아일리시는 10대 관점에서 이 심오한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특히나 Z세대들에게 큰 공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데뷔하자마자 10대들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빌리는 음악적으로도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미 주요 부문 수상까지 싹쓸이하며 이 시대에 새로운 스타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2020년에는 그 시대에 제일 잘 나가는 가수만 부를 수 있다는 007 시리즈 주제가까지 부르게 되었습니다. 'No Time To Die'는 2022년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받으며 그래미에 이어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2019년 싱글로만 발매된 'I Love You'는 다른 유수의 뮤지션들을 제치고 2021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상까지 받았습니다.

19살의 그녀는 2021년 7월 두 번째 앨범 'Happier Than Ever'를 발매했습니다. 그녀의 속삭이는 목소리와 오빠 피니어스의 프로듀싱은 여전하지만 빌리는 음악적 변신을 선보였습니다. 줄리 런던, 페기 리,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50년대 팝과 재즈 영향을 받은 두 번째 앨범은 이전에 선보였던 빌리의 음악과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데뷔 앨범 작업 때 상당히 불안과 압박감을 느끼며 작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Happier Than Ever' 작업 때는 다행히 자신감을 많이 찾았고 편안하게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데뷔 앨범보다 더 어둡고 무거워졌지만, 'Happier Than Ever'는 미니멀하고 더 차분해지면서 빌리의 또 다른 음악적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앨범 타이틀처럼 밝은 내용을 다룬 것은 아니었습니다. 압력, 명성, 불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빌리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가상 이야기를 버무려 내는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습니다. 마냥 어둡고 불안한 10대의 모습을 보였던 이전 때와는 달리 더 성숙한 음악을 선보이면서 'Happier Than Ever'는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비록 데뷔 앨범만큼의 파급과 판매량은 없었지만 더 성숙한 빌리 아일리시의 모습을 선보인 상당히 좋은 앨범이었습니다.

2023년 7월에는 영화 바비 OST를 발표해 그래미에서 올해의 노래,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수상하게 되면서 빌리 아일리시의 상승세를 더 이어갔습니다. 2024년 5월, 빌리의 세 번째 앨범 'Hit Me Hard and Soft'가 발매되었습니다. 23살 그녀의 세 번째 앨범은 현재 가히 차기 올해의 앨범으로 낙점될 정도로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23살의 어린 나이에 그래미와 아카데미 등을 수상하고, 코첼라에서 메인 무대에 서는 등 뮤지션으로 이룰 건 다 이룬 빌리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다시 초창기 빌리 아일리시의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나온 두 번째 앨범 'Happier Than Ever'는 그녀의 혼란스럽고 더 우울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팬데믹 기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온 빌리는 세상과 어울리고 더 자신의 본모습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 앨범 'Hit Me Hard and Soft'는 오히려 데뷔 앨범의 연장선, 후속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높아진 명성에 대한 회의감, 자신의 성적 정체성 등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더 대담하게 토로합니다. 이번 앨범 역시 이전처럼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음악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지 않고, 곡마다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하나의 견고한 앨범을 만들려는 빌리 아일리시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을 Z세대 감수성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한 사례라고 봅니다. 화려함 대신 불안, 확신 대신 질문, 과시 대신 자기해체. 그녀의 음악은 시대의 정서를 날것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우울과 불안, 심지어 자기혐오까지 솔직하게 음악으로 풀어낸 빌리 아일리시. 이 어두운 감성을 풀어낸 빌리의 음악은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앨범을 낼수록 음악적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데뷔 때의 충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점차 성숙해지고 깊이 있어지는 모습은 일회성 유행이 아닌 진짜 아티스트의 궤적입니다. 과연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까요? 앞으로의 빌리 아일리시, 예측할 수 없는 음악들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참고: https://youtu.be/QZRgCDtvVaE?si=8LXjiZakWAXMuN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