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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드 로우, 글램 메탈의 선구자 (세바스찬 바흐, 갈등, 전성기 이후)

by oasis 2026. 3. 6.

1980년대 후반 글램 메탈의 제2차 웨이브를 선도했던 스키드 로우

 

솔직히 저는 스키드 로우를 처음 들었을 때, 단순한 글램 메탈 밴드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가죽 재킷, 그리고 메탈씬의 전형적인 이미지 말이죠. 하지만 세바스찬 바흐의 보컬이 귀를 찢고 들어오는 순간, 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였거든요.

그 시절의 저는 세상이 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어른들의 위선이 보였고, 제 안에 있는 무언가가 폭발할 것 같았죠. 그때 들었던 'Youth Gone Wild'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저 자신을 대변해주는 외침처럼 느껴졌습니다. 세바스찬 바흐라는 이름, 그리고 스키드 로우라는 밴드는 그렇게 제 청춘의 사운드트랙이 되었습니다.

스키드 로우는 어떻게 세바스찬 바흐를 찾았나

스키드 로우의 시작은 사실 본 조비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기타리스트 데이브 세이보와 존 본 조비는 어린 시절 이웃이었고, 둘은 서로에게 약속을 했죠. 먼저 록스타가 되는 쪽이 나머지 한 명을 끌어주기로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먼저 성공한 쪽은 존 본 조비였습니다.

데이브는 음반 샵에서 일하던 평범한 뮤지션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베이시스트 레이첼 볼란을 만났고, 둘은 의기투합해 밴드를 결성했죠. 밴드 이름은 도로의 타이어 자국을 보고 떠올린 '스키드 로우'로 정했습니다. 둘은 곡을 만들고 멤버를 모으며 준비를 마쳤지만,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바로 보컬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처음 스키드 로우가 영입한 보컬은 세바스찬 바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맷 팔론이라는 보컬리스트가 먼저 합류했고, 본 조비의 도움으로 7천 명 앞에서 오프닝 공연까지 했습니다. 저였다면 그 무대에서 인생이 바뀌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본 조비의 매니저가 찾아와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보컬을 바꿔라. 쟤는 스타가 아니다."

맷 팔론도 실력 있는 보컬이었지만, 본 조비 측이 본 건 그 이상이었습니다. 차별점이 없었던 거죠. 그저 잘하는 보컬이 아니라, 무대를 지배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스키드 로우는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보컬을 찾아 헤맸고, 마침내 세바스찬 바흐를 발견했습니다.

세바스찬 바흐는 본명이 세바스찬 필립 비에르크였지만, 예명을 바흐로 바꿨습니다. 마침 그 시기가 작곡가 바흐의 300번째 생일이어서, 주목받기 딱 좋다고 판단했죠. 그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 자리에 있던 존 본 조비의 부모님이 그를 알아봤습니다. "우리 아들 친구가 보컬을 찾고 있는데, 네가 잘 맞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요.

세바스찬이 스키드 로우의 데모 테이프를 들었을 때, 특히 'Youth Gone Wild'라는 곡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도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멜로디가 귀에 박히면서, 동시에 뭔가 제 안의 분노를 대신 표현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세바스찬은 토론토에서 CM송 같은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이 곡을 직접 불러야겠다는 생각에 뉴저지까지 건너갔습니다.

스키드 로우 멤버들이 세바스찬을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밉살스럽고 시끄럽지만, 보컬의 드라이브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밉살스러움과 시끄러움이 스키드 로우를 완성시킨 마지막 퍼즐이었죠. 세바스찬은 첫날부터 술집에서 말싸움을 벌였고, 멤버들은 7개월 동안 보컬을 찾느라 고생한 게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동시에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본 조비와의 갈등은 왜 시작됐나

본 조비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스키드 로우가 음반 계약도 맺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콘서트에 오프닝 밴드로 세워줬고, 본인이 세운 회사와 계약을 맺게 해줬죠. 스키드 로우의 1집은 미국에서만 500만 장 이상 팔렸고, 밴드는 단숨에 록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저는 그 시절 스키드 로우의 음악을 들으며, 이들이 단순한 글램 메탈이 아니라 진짜 '뭔가'를 가진 밴드라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스키드 로우는 본 조비와 맺은 계약 덕분에, 버는 돈의 일정 부분을 본 조비 측에 지급해야 했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세바스찬 바흐는 달랐습니다. "밴드가 뜬 건 결국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인데, 왜 돈을 떼줘야 하는가?" 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세바스찬이 없었다면 지금의 스키드 로우는 없었을 테니까요.

세바스찬은 공개적으로 이 계약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멤버들과의 온도차는 점점 벌어졌습니다. 스키드 로우의 멤버들은 모범생에 가까운 성향이었지만, 세바스찬은 달랐습니다. 그는 무대에서 욕설을 남발했고, 'H 키는 새것'이라는 티셔츠를 입고 나와 논란을 일으켰죠. 관객이 유리병을 던지자 그대로 다시 던져버려 엉뚱한 사람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시 세바스찬의 행동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의 진정성이 느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는 가사에 10대의 일탈을 썼으면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저 음악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이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메울 수 없는 골이 되어갔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본 조비의 투어 중 일어났습니다. 세바스찬이 오프닝 공연 중 무대에서 본 조비를 조롱했고, 공연이 끝난 후 존 본 조비가 60여 명을 대동하고 찾아와 따졌습니다. "어떻게 네가 나를 조롱하냐?" 세바스찬의 아버지는 "저 녀석 죽여버리겠다"고까지 말했고, 이후 둘은 서로를 공개적으로 적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난처했던 사람은 데이브 세이보였습니다. 자기 밴드 멤버와 절친이 서로 싸우는 걸 보며, 거의 3년을 존 본 조비와 어색하게 지냈다고 하죠. 세바스찬은 결국 계약을 다시 협상해 본 조비 측에 지급하던 비용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틀어져버렸습니다.

전성기 이후, 스키드 로우에 무슨 일이 있었나

스키드 로우의 2집은 1991년에 나왔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음악적으로도 1집보다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았죠. 헤비메탈 사운드에 가까워졌고, 가사도 더 철학적으로 변모했습니다. 저는 이 앨범에서 세바스찬의 보컬이 정점에 달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Wasted Time' 같은 곡에서의 감정 표현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영혼을 건드리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해, 록 씬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너바나의 등장과 함께 그런지가 주류가 되었고, 글램 메탈은 순식간에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았죠. 스키드 로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매니저는 시애틀 사운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고, 3집은 3년이 지난 1995년에야 나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바스찬과 멤버들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세바스찬은 자신도 작곡에 참여하고 싶다고 요구했지만, 레이첼과 데이브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바스찬은 자신이 멜로디를 만든 곡들조차 작곡 크레딧에 이름이 없다며 불만을 표했죠. 저는 이 부분에서도 세바스찬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로 곡을 완성시켰는데, 인정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억울할 테니까요.

3집은 판테라의 영향을 받은 헤비메탈 사운드로 변신했고, 음악적으로는 훌륭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기존 팬들은 이질감을 느꼈고, 새로운 팬들은 끌어모으지 못했죠. 저도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 "이게 스키드 로우 맞나?" 싶었습니다. 음악 자체는 좋았지만, 1집과 2집에서 느꼈던 그 화려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는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세바스찬 바흐는 스키드 로우에서 해고당했습니다. 키스의 오프닝 공연 제안을 두고 세바스찬은 무조건 하자고 했지만, 레이첼은 거절했고, 세바스찬이 음성 메시지로 따지자 해고 통보가 날아왔습니다. 쌓여있던 불만이 마침내 폭발한 순간이었죠.

이후 세바스찬은 뮤지컬과 솔로 활동으로 전환했고, 스키드 로우는 네 차례나 보컬을 바꾸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전성기의 화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 달 전에도 새 앨범이 나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모르죠.

흥미로운 건, 세바스찬과 존 본 조비가 먼 훗날 화해했다는 점입니다. 2006년, 세바스찬이 액슬 로즈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마침 존 본 조비도 같은 식당에 있었습니다. 세바스찬은 용기를 내서 다가가 악수를 청했고, 존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헤이 맨" 하며 포옹했습니다. 그날 밤, 셋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고 하죠.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젊은 시절의 세바스찬은 너무나 강렬했고, 그 강렬함이 스키드 로우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관계를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도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거겠죠.

세바스찬 바흐의 보컬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놀랍습니다. 그 카랑카랑하게 치솟는 고음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였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기억합니다. 스키드 로우는 비록 오래가지 못했지만, 80년대 글램 메탈의 마지막 불꽃을 가장 화려하게 태운 밴드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세바스찬 바흐가 있었죠. 확실한 건, 그의 강렬함이 없었다면 스키드 로우는 결코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참고: https://youtu.be/V8iuR3botF0?si=Hxie86NMhBkb5RX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