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음악이라면 처음 들었을 때 바로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리카겔을 만나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솔직한 반응은 "좋다"가 아니었습니다. "뭐지, 이건?"이었습니다. 멜로디를 따라가려고 하면 오히려 놓치고, 가사에서 메시지를 찾으려 하면 더 헷갈렸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귀에서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3년 만에 재개된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실리카겔이 올랐고, 여름에 신보 발매와 함께 대규모 공연도 예고됐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그 첫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실리카겔이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이 밴드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제 경험과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스페이스 공감 복귀가 남다른 이유
스페이스 공감이 3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예산 문제로 라이브 공연이 멈춰 있던 동안, 솔직히 이 프로그램이 다시 살아날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공영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이 한번 꺼지면 잘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글이 공정거래위원회와의 동의 의결 과정에서 국내 음악산업 상생 기금 300억 원을 EBS에 출연하면서 다시 문이 열렸습니다. 이 경위 자체가 좀 아이러니하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이 살아난 건 반가운 일입니다.
이달 초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홈커밍데이 첫 공연에는 장기하, 한로로, 그리고 실리카겔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 세 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헬로루키 출신입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173팀을 배출한 이 프로젝트는 국카스텐, 장기하 같은 이름들이 처음 대중 앞에 선 무대이기도 합니다.
실리카겔은 2016년 헬로루키 올해의 우승자였습니다. 그 당시 장기하가 출연할 때는 집에서 스페이스 공감을 챙겨봤다고 멤버가 직접 말했습니다. 그러다 한로로 결선 때는 축하 무대를 섰고, 이번에는 자신들이 주인공으로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이걸 두고 김한주는 "정점을 찍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페이스 공감이 갖는 의미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싶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인디 뮤지션을 소개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상업적인 논리와 거리를 둔 음악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식 통로 중 하나였습니다. 멜론 차트에 오를 필요도 없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맞출 필요도 없는 공간. 그 공간이 사라졌다가 돌아왔다는 사실은, 음악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뭔가 빠져 있던 자리가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김춘추가 무대에서 "다시는 그만둔다는 소리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잠깐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습니다. 공연으로 먹고사는 뮤지션들한테 이런 무대가 끊겼을 때 어떤 감각이었을지, 조금은 짐작이 가기 때문입니다.
신보 발매와 여름 공연의 의미
실리카겔이 올여름 새 앨범 발매와 함께 체조경기장 공연을 예고했습니다. "지금 거의 다 만들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솔직히 기대가 앞섰습니다. 이 밴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2015년 EP 앨범으로 데뷔한 이후, 실리카겔은 꾸준히 자기 방식을 지켜온 밴드입니다. 2024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2023년 멜론뮤직어워드 베스트 뮤직스타일 수상 등 평단과 대중 양쪽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상들이 실리카겔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왔습니다. 팝 차트를 점령한 게 아니라, 음악 자체의 완성도로 쌓아 올린 자리들입니다.
저는 실리카겔의 음악이 체조경기장 같은 대형 공연장과 어떻게 만날지를 사실 좀 궁금하게 생각합니다. 이 밴드의 음악은 작은 공간에서 더 잘 작동하는 종류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거든요. 대학교 축제에서 처음 실리카겔 공연을 봤을 때, 처음 몇 분은 솔직히 집중이 잘 안 됐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음악이 이해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명이랑 사운드랑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이 다 섞이면서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실리카겔의 공연이 단순히 노래를 들려주는 행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어떤 상태를 만들어냅니다. 체조경기장이라는 큰 공간에서도 그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다른 차원의 경험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게 가능한 밴드가 있다면 실리카겔 정도는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새 앨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홈커밍데이 무대에서 김한주가 "요즘의 저희를 표현할 수 있는 곡을 준비했다"고 한 말이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밴드는 변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여왔습니다. 그 균형이 이번 앨범에서 어떻게 나타날지가 포인트입니다.
실리카겔의 음악이 낯설다고 느끼는 분들, 혹은 한두 번 들어봤는데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라면, 새 앨범이 나왔을 때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냥 틀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언젠가 어느 순간에 불쑥 들어오는 게 이 음악입니다.
실리카겔 음악을 듣는 방법
음악을 듣다가 "이게 왜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자꾸 생각난다"는 경험,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실리카겔이 딱 그런 경우입니다. 이걸 문제라고 느끼는 분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하나입니다. 그 상태가 이미 정상이라는 겁니다.
고등학교 때 이 음악을 들었다면 저는 아마 끝까지 못 들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의 저는 음악에서 명확한 감정이나 메시지를 찾으려 했습니다. 가사가 공감이 되어야 하고, 후렴이 귀에 남아야 하고, 들으면서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야 했습니다. 실리카겔은 그 순서를 무시합니다. 의미 이전에, 감각이 먼저 들어옵니다.
비평적으로 보면 이 밴드의 음악은 전통적인 대중음악 구조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습니다. 후렴이 명확하지 않거나, 곡의 흐름이 예측대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그 접근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닙니다.
미국 여행 중 LA에서 밤에 혼자 걸을 때 이어폰으로 실리카겔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별 기대 없이 틀었는데, 그 도시가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간판이나 불빛, 소음들이 하나의 리듬처럼 느껴졌습니다. 음악이 현실을 바꾼 게 아니라,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진 겁니다. 그 경험이 실리카겔의 음악이 뭘 하는 건지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직장에 다니면서는 이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이 좁아졌습니다. 출근길에 틀면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집중이 필요한 시간에는 잘 안 듣게 됩니다. 대신 퇴근 후, 혼자 있는 밤에 틀면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감정을 정리해주는 음악이 아니라, 머릿속의 복잡함을 그냥 흘려보내게 만드는 음악이라는 걸 그때마다 다시 느낍니다.
친구들이랑 이 음악을 들을 때 반응이 항상 양극단으로 갈립니다. "이게 뭐야"와 "미쳤다" 사이의 중간 반응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처음에 전자였다가 지금은 확실히 후자입니다. 그 변화가 어느 시점에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짚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어느 날 보니까 이 음악이 자연스러워져 있었습니다.
실리카겔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실질적인 제안은 이렇습니다. 먼저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후렴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되고, 가사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배경처럼 틀어두십시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음악이 들어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이 오면 그냥 거기 있으면 됩니다.
여름에 체조경기장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실리카겔의 라이브를 직접 경험해보실 기회가 생겼습니다. 라이브는 음원과 또 다릅니다. 공간이 달라지고, 소리가 몸에 닿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실리카겔의 음악이 낯선 분이라면 오히려 라이브가 먼저 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그 축제 공연에서 그랬으니까요.
결국 이 밴드의 음악은 듣는 방법을 바꿔야 들린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계속 낯설고, 그 낯섦을 그대로 두면 어느 순간 문이 열립니다.
스페이스 공감이 돌아왔고, 실리카겔은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고, 여름에 대형 공연도 옵니다. 이 세 가지가 겹친 2026년 상반기는, 이 밴드를 다시 한번 들어볼 이유로 충분합니다. 처음 들을 때 "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신다면,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그 상태로 조금 더 두시면 됩니다. 저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새 앨범이 나오면 바로 들을 생각입니다. 이 밴드가 요즘의 자신들을 어떻게 소리로 만들어냈는지, 솔직히 기다려집니다.
참고: https://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603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