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묭의 '마리골드'가 일본 음원 스트리밍 역사상 최초로 10억 회 재생을 돌파했습니다. 고등학교 퇴학 경력이 있던 소녀가 홍백가합전 무대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5년이 안 됩니다. 저는 '마리골드'를 처음 들었을 때 특별히 화려하지 않은데도 며칠간 귓가를 맴돌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묭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그녀의 성공은 철저히 준비된 결과였습니다. 데뷔 전 130곡을 만들어낸 사람을 운이 좋았다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녀의 음악이 2010년대 후반 J-POP 중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있고, 단지 SNS 바이럴 덕분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논쟁의 중심에 선 아이묭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퇴학 당한 소녀가 130곡을 만들기까지
1995년 효고현에서 태어난 아이묭, 본명 모리이 아이미는 3남 3녀 여섯 남매라는 대가족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가족 여행 한 번 가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이 집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가수가 꿈이었고, 아버지는 음향 관련 일을 했으며, 어머니는 노래를 잘했습니다. 아이묭은 말 그대로 음악 속에서 자란 셈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니시노미야 시로 이사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공부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보통의 부모라면 성적 때문에 야단을 쳤을 텐데, 아이묭의 부모님은 달랐습니다. "공부가 안 되더라도 뭔가 하나는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꼭 있을 거다"라고 말해줬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이 나중에 아이묭이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봅니다.
중학교 때 육상부 100m 허들 선수로 활동하던 그녀에게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수학여행에서 개구리 옷을 입고 코다쿠미의 곡을 불렀는데, 친구들이 "너 노래 엄청 잘하네"라고 칭찬한 겁니다. 공부로는 인정받지 못했던 소녀가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은 순간이었습니다. 저도 처음 사람들 앞에서 제 글이 칭찬받았을 때의 그 떨림을 기억하기에, 그 순간이 얼마나 큰 의미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상황이 악화됐습니다. 공부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는 보건실에 자주 가기 시작했고, 결국 퇴학을 당했습니다. 이즈를 당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교실에 있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통신제 고등학교로 전학한 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아이묭이 학교를 그만둔 게 오히려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보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퇴학 자체가 축복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그 좌절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것, 그게 중요했던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니코니코 동화에 자작곡을 올리기 시작했고, 19세 때는 유튜브 음악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그 영상을 본 소속사 스태프가 트위터로 직접 연락을 해왔습니다.
여기서 프로듀서 호시노 주니츠가 낸 미션이 압권입니다. "정식 입사 전까지 50곡을 만들어봐." 보통 사람이면 포기했을 숫자인데, 아이묭은 반 년 만에 50곡을 완성했고 최종적으로 130곡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생관에 대한 곡부터 연애곡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작업량을 보면, 아이묭의 성공을 단지 '감성'이나 '공감'만으로 설명하는 건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4년 워너뮤직 산하 레이블의 대표 스즈키 르마가 아이묭을 만났을 때, 그는 당장 메이저 데뷔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오래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키우고 싶다"는 판단 아래 작사, 작곡, 무대 매너, 보컬 트레이닝을 더 시켰고, 첫 싱글은 인디레이블에서 테스트 마케팅으로 냈습니다. 이 전략이 나중에 아이묭의 탄탄한 커리어 기반이 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마리골드가 만든 기적과 논쟁
2015년 아이묭은 가수가 아닌 작사가로 먼저 음악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웨스트의 '타임 고스 바이' 가사를 쓰면서 첫발을 뗀 겁니다. 같은 해 3월 인디즈 싱글 '당신 해부 순애가 죽어라'로 인디즈 데뷔를 했는데, 가사가 너무 과격하다는 이유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묭은 "솔직하게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곡을 써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솔직함이 나중에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됩니다.
2016년 11월 첫 메이저 싱글 '살아 있었구나'로 정식 데뷔를 했습니다. 여고생의 생리 현상을 소재로 한 곡이었는데, 본인은 발표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스태프들이 만장일치로 발표를 추천했습니다. 이런 과감함에 대해 '참신하다'는 평가도 있고, '자극적이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곡이 아이묭의 방향성을 확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봅니다. 꾸미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겠다는 의지 말입니다.
2017년 세 번째 싱글 '너는 록을 듣지 않아'가 전국 42개 방송국에서 8월 라디오 파워플레이로 선정되며 4년 3개월 만에 최다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아이묭 본인도 이 곡을 커리어의 분기점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만든 최고 걸작을 넘어서는 곡을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마리골드'입니다.
2018년 8월 발매된 '마리골드'는 먼저 "밀짚모자를 쓴 네가 흔들리는 마리골드를 닮았어"라는 가사가 떠올랐고, 거기서부터 곡 전체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아이묭이 마리골드의 꽃말을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꽃말은 '이별의 슬픔과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인데, 공교롭게도 가사의 주제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저는 이 우연이 오히려 아이묭의 감성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증명한다고 봅니다.
곡을 완성한 다음 날 밴드 멤버들에게 들려줬을 때 바로 편곡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 시점에서 이미 대박의 예감이 있었던 거죠. 결과는 일본 최초 음원 스트리밍 10억 회 돌파, 구글 FCM 주제가 선정, 그리고 제69회 NHK 홍백가합전 출연으로 이어졌습니다. 퇴학당한 소녀가 홍백가합전 무대에 선 겁니다.
'마리골드'의 성공을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SNS와 유튜브 바이럴 덕분이라는 시각도 있고, 곡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났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저는 둘 다 맞다고 봅니다. 좋은 곡이었기에 바이럴이 가능했고, 바이럴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그 좋은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카페에서 우연히 이 곡을 듣고 검색해서 찾아들었으니까요. 그날의 공기와 노래가 묘하게 겹쳐 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019년은 아이묭의 해라 불릴 만했습니다. '하루노히'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주제가로 쓰였고, 가사 전반이 신영만과 봉미선의 사랑 이야기와 연결돼 있습니다. 가사 속 키타센주역 플랫폼은 원작에서 형만이 미선에게 프로포즈한 장소이고, "벌써 저녁노을 지고 있네"는 극장판 속 해질녘 프로포즈 장면을 표현한 겁니다. 아이묭이 처음 참석한 친구 결혼식 축가로 부른 곡이기도 합니다. 10월에는 '하늘의 프로그램을 아는 사람이요'가 동명 극장판 애니메이션 주제가로 쓰였고, 12월에는 두 번째 정규 앨범이 제61회 일본 레코드 대상 우수 앨범상을 받았습니다.
데뷔 3년 만에 홍백가합전 출연, 레코드 대상 수상, 무도관 단독 공연까지. 이즈음 아이묭은 더 이상 신인이 아닌, 일본 대중음악의 중심 아티스트가 됐습니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아이묭이 남긴 것들
아이묭을 다른 J-POP 아티스트와 구분 짓는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포크 기반 기타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입니다. '마리골드'나 '너는 록을 듣지 않아' 같은 히트곡만 들으면 밴드 사운드가 화려해 보이지만, 본질은 통기타 하나로 노래하는 기타리스트입니다. 밥 딜런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9년 무도관 공연과 2022년 고향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 구장 공연 모두 통기타 라이브로 진행했습니다. 수만 명 앞에서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한 겁니다. 특히 고시엔 구장 공연은 퇴학당했던 그 도시에서 열린 공연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영상으로 보면서 '드라마도 이렇게는 안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가사를 먼저 쓰고 멜로디를 붙이는 방식입니다. 멜로디가 먼저 떠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자 시점으로 쓴 가사가 절반 정도 된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적 감성을 다루기 때문에 남녀 구분 없이 공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저도 아이묭의 곡을 들으며 '이 가사가 남자 시점인지 여자 시점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냥 '사람의 감정'으로 느껴졌습니다.
셋째, 중성적인 보컬입니다. 너무 여성스럽지도 남성적이지도 않은 딱 중간의 목소리. 이게 아이묭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편안하면서도 귀에 잘 들어오는, 누가 들어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 음악의 포용력이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묭이 J-POP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에서 J-POP은 비주류였습니다. 일본 노래를 듣는다고 하면 오타쿠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위주의 음악, 애니메이션 주제가 위주의 음악. 한국 대중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장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묭은 그 장벽을 허문 뮤지션 중 한 명입니다. '마리골드', '너는 록을 듣지 않아',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 같은 곡들이 SNS와 유튜브 바이럴을 통해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J-POP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요네즈 켄시의 'Lemon'과 함께 아이묭은 한국에서 J-POP 중흥기를 연 주역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이묭 이후로 Official髭dism, King Gnu, Mrs. GREEN APPLE 같은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고, J-POP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이 줄줄이 열리고 있습니다. NHK에서 이 현상을 분석할 정도였습니다. 닛케이 음악인 파워랭킹에서 4위를 차지하며 여성 솔로 아티스트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전기 오집 '고양이에게 질투'를 발매하며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20대 때 앨범 다섯 장, 싱글 16장을 남긴 아이묭은 "휴대폰에 제가 지금까지 만든 곡을 메모하고 있고 제 디스코그래피가 늘어나는 것이 매우매우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엑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총 팔로워가 600만 명이 넘는 아이묭은 이제 일본 소셜 미디어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이 됐습니다.
특히 전설적인 밴드 스피츠와 함께 투어를 했을 때, 스피츠가 서프라이즈로 아이묭의 '너는 록을 듣지 않아'를 커버해 줬다고 합니다. 아이묭은 "세트리스트든 리허설이든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다. 정말 커버해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동경하던 밴드가 자기 곡을 불러준 겁니다.
저는 아이묭을 들으며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누군가를 잊지 못해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것. 그녀의 노래는 제 하루의 배경음악이 되고, 그 배경 속에서 저는 조금 덜 외로워집니다. "공부가 안 되더라도 뭔가 하나는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꼭 있을 거다"라던 부모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아이묭은 그 뭔가 하나를 찾았고, 그 음악으로 아시아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교실에 있고 싶지 않았던 소녀가 수만 명이 모인 고시엔 구장에서 기타 하나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 이것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아이묭의 음악은 화려한 기교보다 공감의 밀도를 택한 결과물입니다. 대중성과 인디 감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색을 유지합니다. 그녀의 음악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 남습니다. 마치 일기장 한 페이지처럼. 그리고 그 일기장은 누군가의 하루와 자연스럽게 겹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