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5월, 애니멀스는 단 한 번의 녹음으로 록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8분의 6박자 아르페지오로 시작되는 그 곡은 미국과 영국 차트 정상을 동시에 점령했고,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대학 동아리방에서 이 곡을 처음 제대로 들었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부르는 모습은 단번에 저와 친구들을 사로잡았고, 우리는 그날 밤 불 꺼진 동아리방에서 합주를 했습니다. 인트로가 울리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해 뜨는 집, 그 미스터리한 기원
House of the Rising Sun이라는 곡의 정확한 출처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가사 속 '해 뜨는 집'이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구전 민요였고,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약장수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만병통치약을 팔 때 곁에 있던 악사들이 주로 불렀던 곡 중 하나였습니다.
악보로 인쇄된 최초의 버전은 1925년 로버트 윈슬러 고든이 잡지에 기고한 것으로, 당시에는 한 소녀의 시점에서 쓰여졌습니다. 뉴올리언스의 '떠오르는 태양'이라 불리는 집이 수많은 가련한 소녀들을 망쳤다는 내용이었죠. 그러나 1933년 녹음된 클라렌스 애슐리와 그웬 포스터의 버전에서는 화자가 소년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이 곡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계속 변형되었습니다.
민속학자 앨런 로맥스는 1937년 당시 16살이던 조지아 터너라는 소녀로부터 이 노래를 녹음했고, 다른 사람에게서 녹취한 가사를 합쳐 현대적인 뼈대를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피트 시거와 우디 거스리 같은 포크 뮤지션들에게 공유했고, 이것이 미국 포크 뮤직 신에 이 곡이 전파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한 곡이 시대와 사람을 거치며 계속 진화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았거든요.
'해 뜨는 집'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사창가나 술집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1822년 루이지애나 화재로 타버린 라이징 선 홀이라는 건물이 그 장소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1860년대 신문 광고에 등장한 커피하우스 '더 라이징 선'이 실제 장소라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해 뜨는 집'은 구체적인 장소라기보다는 가난과 불행에서 벗어나려 해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현실을 상징한다고 봐야 합니다.
애니멀스의 파격적인 재해석
1950년대 후반,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활동하던 포크 뮤지션 데이브 반 롱크는 이 곡을 독특하게 편곡했습니다. 베이스 음이 한 음씩 하강하는 그의 편곡은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했습니다. 밥 딜런은 1962년 데뷔 앨범에서 이 편곡을 그대로 사용했고, 아이러니하게도 팬들 사이에서 데이브가 밥 딜런을 카피했다는 오해가 생겨 데이브는 더 이상 이 곡을 부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알고 나서 음악계의 크레딧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애니멀스는 1963년 영국 뉴캐슬에서 결성되었습니다. 밴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멤버들의 기억조차 엇갈립니다. 무대 위 격렬한 퍼포먼스 때문이라는 설, 에릭 버든이 어울리던 친구의 별명에서 따왔다는 설,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 그레엄 본드가 무작위로 붙여줬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틀즈의 댄디한 매력이나 롤링 스톤즈보다 훨씬 거칠었던 그들의 음악을 생각하면, '짐승들'이라는 이름만큼 어울리는 표현도 없습니다.
애니멀스의 특징은 어쿠스틱한 미국 리듬 앤 블루스를 일렉트릭 기타와 오르간으로 아주 거칠게 재해석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뉴캐슬 클럽가를 빠르게 접수한 뒤 1964년 런던에 진출했고, 첫 싱글이 영국 차트 21위에 오르며 빠르게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운명을 바꿀 공연이 열렸습니다. 바로 척 베리의 영국 투어였죠.
1964년 5월, 척 베리의 투어에 참여한 영국 뮤지션들은 모두 더 빠르고 격렬하게 락앤롤을 연주하며 이 음악 영웅을 뛰어넘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애니멀스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8분의 6박자로 시작되는 일렉 기타 아르페지오, 피를 토하는 듯한 에릭 버든의 처절한 보컬, 그리고 미친 듯이 넘실대는 오르간 소리와 함께 House of the Rising Sun을 불렀고, 극장에는 광란의 환호가 터졌습니다. 저도 동아리방에서 이 곡을 합주했을 때 그 인트로가 울리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마치 60년대 영국 클럽에 들어간 기분이었죠.
공연이 끝난 뒤 관중들은 이 곡을 따라 부르며 극장을 떠났고, 멤버들은 즉시 음반 발매를 결정했습니다. 며칠 뒤인 5월 18일, 투어를 이탈한 채 스튜디오를 방문한 그들은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이 곡을 완성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일렉트릭 사운드와 로열티 분쟁
애니멀스 버전의 가장 큰 매력은 어쿠스틱으로 전승되던 노래를 일렉트릭 사운드로 연출했다는 점입니다. 밥 딜런은 운전 중 라디오에서 이 곡을 듣고 차를 세운 뒤 마치 헤드뱅잉 하듯 격렬하게 반응했다고 합니다. 1965년 7월 25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밥 딜런이 일렉 기타를 들고 나와 팬들을 충격에 빠뜨린 그 유명한 퍼포먼스를 보면, 애니멀스 버전이 록 음악 진화 과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주도 여행 중 숙소에서 이 곡을 다시 틀었습니다. 이상하게 밖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와 어울렸고, 그때 블로그에 이렇게 썼습니다. "애니멀스는 록이 낭만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의 음악에는 노동계급의 정서가 배어 있습니다. 화려함보다 진흙 같은 현실이 묻어나고, 세련되기보다 날것에 가깝습니다. 애니멀스는 록이 단순한 청춘의 낭만이 아니라 삶의 그림자를 노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애니멀스 버전의 가사는 소년이 주인공입니다. 재봉사인 어머니와 노름꾼인 아버지를 둔 소년은 불행한 환경을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한 발은 플랫폼에, 또 한 발은 열차에 올린 채"라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저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결국 그는 "무거운 쇠사슬을 차기 위해" 뉴올리언스로 돌아갑니다. 이 해 뜨는 집이 술집인가, 사창가인가, 도박장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가난과 불행에서 벗어나려 해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현실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곡에도 오점이 있습니다. 바로 로열티 분쟁입니다. 작곡자는 미상이기에 트레디셔널로 표기되었지만, 편곡은 전 멤버가 참여했기에 다섯 명의 이름을 모두 표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간 부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알파벳 순서상 가장 앞인 키보디스트 앨런 프라이스의 이름만 기재되었습니다. 결국 편곡 로열티는 앨런에게만 지급되었고, 이는 팀 내 불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비행 공포증과 갈등을 견디지 못한 앨런은 1965년 5월 밴드를 탈퇴했습니다.
이후 애니멀스는 에릭 버든 앤 디 애니멀스로 활동했고, 7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재결합을 반복했습니다. 에릭 버든은 밴드 워와의 협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지만, House of the Rising Sun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멤버들은 훗날 인터뷰에서 "우리가 참 순진했다"고 회상했습니다.
House of the Rising Sun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거친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곡입니다. 블루스를 록으로 번역한 사례이자, 어둡고 음울한 정서를 파격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에릭 버든의 허스키한 보컬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고, 일렉트릭 사운드로 재해석된 포크 음악은 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록이 단순히 반항이나 낭만만을 노래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만약 아직 들어보지 않았다면, 늦은 밤 조명을 낮추고 이 곡을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60년대 영국 클럽의 그 축축한 공기가 느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