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원가로만 알던 그 곡, 사실 '실수'에서 나왔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전 세계 축구장을 뒤덮은 Seven Nation Army는 잭 화이트가 2001년 호주 호텔에서 사운드 체크하다가 우연히 튕긴 7개 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목조차 구세군(Salvation Army)을 잘못 발음한 데서 나온 말장난이었죠.
저 역시 처음엔 그저 경기장에서 흘러나오는 응원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 잭 화이트의 공연을 직접 보고 나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락커가 아니라, 지미 페이지나 에릭 클랩튼 급의 기타 장인이 제 앞에 서 있었으니까요.
Seven Nation Army가 세계적 응원가가 된 이유
이 곡이 축구 응원가로 자리 잡은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계획된 적이 없었습니다. 2003년 10월 밀라노에서 벨기에 클럽 브뤼허 팬들이 경기 전 술집에서 우연히 이 곡을 들었고, 단순한 리프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날 경기에서 브뤼허가 강호 AC밀란을 꺾었죠.
여기서 흥미로운 건 가사가 아니라 기타 리프 자체를 부른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응원가가 후렴구 가사를 외치는 것과 달리, Seven Nation Army는 악기 소리를 사람 목소리로 재현합니다. 저도 경기장에서 이 응원가를 들을 때마다 신기했던 게, 수만 명이 동시에 "땅-땅땅땅-땅땅-땅"을 외치는데 그 에너지가 엄청났거든요.
2006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이 우승 후 이 곡을 열창하면서 완전히 세계적인 현상이 됐습니다. AS로마의 주장 프란체스코 토티는 브뤼허와의 경기 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바로 앨범을 샀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들이 직접 국가대표팀에 퍼뜨린 셈이죠.
어떤 분들은 단순한 리프라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서 유행했다고 하시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 곡엔 원시적인 호소력이 있습니다. 7개 음만으로 집단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주술 같은 힘이요. 퀸의 We Will Rock You처럼 복잡한 편곡 없이도 수만 명을 하나로 묶어내는 마법 같은 거죠.
펜타포트에서 목격한 잭 화이트의 진짜 실력
2024년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저는 솔직히 큰 기대 없이 갔습니다. Seven Nation Army 작곡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무대 위에 오른 잭 화이트를 보는 순간, 제 인식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그의 기타 연주는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선 뭔가가 있었습니다. 빈티지 장비에서 뽑아낸 거친 톤, 의도적으로 일그러뜨린 사운드, 그런데도 한 음 한 음이 정확하게 심장을 때리더군요. 저는 평소 지미 페이지나 에릭 클랩튼 같은 전설적 기타리스트만 인정하는 편인데, 그날 잭 화이트를 제 리스트에 추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미니멀리즘이었습니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시절부터 그는 드럼과 기타 둘만으로 엄청난 사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많은 악기와 복잡한 편곡 없이도 공간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뽑아내는 능력, 이게 진짜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건 그가 공연 전 KBO 한국시리즈를 보러 갔다는 겁니다. 본인 곡이 전 세계 스포츠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는 걸 아는 사람답게, 야구장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었나 봅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많은 팬들이 놀랐죠.
날것의 미학을 지키는 아날로그 반항아
잭 화이트를 다른 현대 기타리스트와 구분 짓는 건 그의 철학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 녹음을 고집하고, 빈티지 장비를 사용하며, 완벽하게 다듬어진 소리를 거부합니다. 이게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라, 소리의 물성을 지키려는 장인 정신이라고 봅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상승과 하강의 반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약자에 이입했다가 강자가 되고, 다시 후퇴하며 전진하는 과정 전부를 창작에 쓴다고요. 실제로 Seven Nation Army를 들어보면 단순한 리프가 3분 52초 동안 반복되면서 묘한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의 음악이 너무 거칠고 불완전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튜닝된 목소리, 깔끔하게 프로듀싱된 사운드가 넘쳐나는 시대에, 잭 화이트는 삐걱거리고 일그러진 소리로 진짜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는 블루스, 컨트리, 개러지 록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The White Stripes, The Raconteurs, The Dead Weather를 거쳐 솔로까지, 모든 프로젝트에서 그만의 날것 미학이 살아 있습니다. 2017년 버니 샌더스 캠페인에서 공연한 것처럼 정치적 신념도 숨기지 않죠. 2016년 트럼프가 무단으로 곡을 사용했을 때는 "역겹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펜타포트에서 그의 공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록이 죽었다고들 하지만, 잭 화이트 같은 뮤지션이 있는 한 록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뿌리를 깊이 파고드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잭 화이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기타 한 대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복잡한 신시사이저나 화려한 무대 장치 없이도, 강렬한 리프 하나로 수만 명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리프가 작곡가의 이름을 모르는 채로 전 세계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민요처럼 불린다는 사실. 이게 바로 그가 꿈꿨던 익명성의 승리이자, 음악가로서 최고의 성취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Seven Nation Army는 우연히 만들어졌지만 필연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2024년까지 스포티파이에서만 17억 회 이상 스트리밍 됐고, 롤링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 중 36위에 올랐습니다. 음악 비즈니스 업계에선 이 곡의 후계자를 찾고 있지만, 저는 당분간 어렵다고 봅니다. 켄드릭 라마의 Not Like Us나 데이식스의 Welcome to the Show가 가능성을 보이긴 하지만, Seven Nation Army처럼 국경과 장르를 초월한 문화적 현상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만약 아직 잭 화이트의 라이브를 경험하지 못하셨다면, 기회가 될 때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음원으로 듣는 것과 무대 위에서 직접 마주하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니까요.
참고: https://h21.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559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