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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티스트, 흑인 음악 유산을 재해석하다. (후보, 재즈 명가, 소울)

by oasis 2026. 3. 8.

재즈 음악가, 존 바티스트

야근하고 지친 밤, 집에 와서 멍하니 TV를 켜면 뭐가 나오나요? 저는 그날 우연히 그래미 시상식 뉴스를 봤습니다. 화려한 수트를 입은 한 남자가 피아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존 바티스트였습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이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무대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기분이 풀리더군요. 음악이 사람을 이렇게 들뜨게 만들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대학 때 교양으로 들었던 재즈 수업은 솔직히 졸렸는데, 존 바티스트를 듣고 나서야 재즈가 이렇게 생동감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미 11개 부문 후보,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존 바티스트는 2022년 제64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무려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해 가장 많은 노미네이션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올해의 앨범을 포함해 다섯 개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해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아티스트였고, 2018년 이후 흑인 아티스트 중 가장 많은 수상을 기록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이해가 안 갔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이렇게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게 가능한가? 하지만 그의 앨범 We Are를 듣고 나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 앨범은 재즈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R&B, 소울, 가스펠, 힙합까지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었습니다. 장르를 구분 짓지 않는 음악이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그의 메시지였습니다. We Are는 단순히 음악적 실험이 아니라, 흑인 음악의 유산과 정체성, 그리고 공동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었습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발표된 이 앨범은, 그가 음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습니다. 제임스 브라운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프리라는 곡에서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느껴졌습니다.

존 바티스트는 형식을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어렵지 않았고, 예술성을 내세우기 위한 장치도 없었습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의도가 앨범 전체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재즈 문외한도 편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24년에는 66회 그래미에서 또다시 여섯 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신인상을 제외한 4대 본상에 모두 노미네이트 되었고, 남성 후보로는 유일했습니다. 그의 음악이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재즈 명가 출신 존 바티스트, 그런데 왜 거리에서 연주했나요?

존 바티스트는 뉴올리언스 근처 케너에서 자랐습니다. 바티스트 가문은 이미 재즈계에서 이름난 집안이었습니다. 뉴올리언스 재즈 음악의 대부였던 라이오넬 바티스트부터 유명 드러머 러셀 바티스트 주니어까지, 모두 한 핏줄로 이어진 음악가 집안이었습니다.

여덟 살 때부터 가족 밴드에서 퍼커션과 드럼을 연주했고,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시작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클래식 피아노 수업을 받으러 다녔고, 비디오 게임 음악을 직접 편곡하며 실력을 쌓았습니다. 17살 때는 이미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갖췄고, 첫 데뷔 앨범 Times in New Orleans를 발매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세계 최고의 음악 대학인 줄리아드 스쿨에 입학한 뒤에도 거리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는 겁니다. 동기들과 트리오를 만들어 학교 근처 인근 공연장에서 연주했고, 나중에는 스테이 휴먼이라는 퀸텟을 결성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이미 실력도 있고 명문대 출신인데, 왜 굳이 거리에서 연주했을까? 그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답이 있었습니다. 그는 음악이 본래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소리를 함께 들으며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런 상호작용이 제한되고,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스테이 휴먼은 즉석 거리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사랑의 소동이라는 이름으로, 뉴욕 지하철, 브루클린 공원, 맨해튼 유니언 광장 등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무대로 삼았습니다. 비싼 음향 장비나 화려한 무대가 없어도, 음악과 사람만 있으면 그곳이 공연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철학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즘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혼자 듣는 게 대부분인데, 존 바티스트는 음악을 다시 사람들 사이로 가져왔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함께라는 단어가 잘 어울립니다. 친구들과 드라이브 갈 때 틀어도 좋고, 부모님과 식사할 때 배경음악으로 깔아도 좋습니다. 20대 후반이 되니 혼자만의 감정보다 관계가 더 중요해지는데, 그의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느낌입니다.

2013년 스테이 휴먼과 함께 발매한 앨범 Social Music은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거리 공연으로 시작한 밴드가 차트 1위를 한 겁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 쇼에 하우스 밴드로 합류했습니다. 이 인연은 무려 7년 동안 이어졌고, 존 바티스트는 토크쇼의 마스코트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소울 사운드트랙, 어떻게 재즈를 이렇게 따뜻하게 만들었나요?

2020년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의 사운드트랙을 맡으면서 존 바티스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였고, 그의 연주는 실제로 존 바티스트의 연주를 분석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손가락 움직임부터 호흡까지, 미세한 터치를 모두 잡아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재즈에 대한 편견이 조금 깨졌습니다. 재즈는 고상하고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울의 사운드트랙은 누구나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존 바티스트는 재즈 음악의 팬이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건 성공했습니다.

영화는 작품성으로도 호평을 받았지만, 사운드트랙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듬해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음악상을 받았고, 존 바티스트는 허비 행콕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흑인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기술적이면서도 따뜻합니다. 즉흥성과 구조가 공존합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기쁨을 전파합니다. 무대 위에서의 에너지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래미 무대에서 보았던 그 밝은 미소가 이해가 갔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었던 겁니다.

2022년 여름에는 월드 뮤직 레디오라는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전작 We Are가 흑인 사회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전 세계로 시선을 넓혔습니다. 힙합, 아프로비트, 재즈, 펑크, R&B, 소울, 라틴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미국, 영국, 콜롬비아, 한국의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야말로 지구본을 담은 앨범이었습니다.

저는 이 앨범을 들으면서 존 바티스트가 단순한 재즈 뮤지션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그는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음악가였습니다. 재즈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소울, 팝, 클래식, 힙합까지 자연스럽게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음악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후보라는 용어를 다시 정의하고 싶다며 대담한 포부를 드러냈습니다. 음악은 모두의 보편적인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분열된 시대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존 바티스트는 전통을 존중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존 바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이 정말로 언어가 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뉴올리언스를 넘어 미국으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계속 뻗어나가는 그의 여정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그의 진심, 바로 음악으로 나누는 평등한 대화입니다. 과연 다음번엔 우리를 또 어느 곳으로 데려다 줄까요? 저는 그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참고: https://youtu.be/tzcaOm1JzqQ?si=PExbrpVRkjvlUP8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