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19일, 지코와 요아소비의 이쿠라(본명 이쿠타 리라)가 함께한 "DUET"이 공개됐습니다. 제목부터 노골적입니다. 한국 힙합씬의 대표 프로듀서와 일본 팝의 상징적 보컬리스트가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저는 처음 이 조합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코의 타이트하고 공격적인 플로우와 이쿠라의 맑고 공간감 있는 보컬이 과연 한 곡 안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꽂고 처음 들었을 때,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의 목소리는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긴장감 있는 균형을 만들어냈습니다.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한 뒤 듣는 음악이어서 그랬는지, 그 조합이 묘하게 제 머리를 환기시켜줬습니다.
지코와 이쿠라의 한일 협업이 갖는 음악적 의미
지코와 이쿠라의 만남은 단순한 국가 간 컬래버가 아니라, 두 가지 리듬 체계의 교차점이라고 봐야 합니다. 지코는 한국 힙합씬에서 '박자를 다루는' 방식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비트를 타는 게 아니라 비트를 밀고, 왜곡하고, 재배치합니다. "Any Song"이나 "새삥" 같은 곡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의 플로우는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중독성이 강합니다. 반면 이쿠라는 선율 위를 부유하는 타입입니다. 요아소비의 "夜に駆ける"나 "IDOL"을 들어보면, 그녀의 목소리는 맑지만 단단하고, 투명하지만 감정의 잔상이 길게 남습니다.
이 둘이 "DUET"에서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인 건 긴장감입니다. 지코의 랩이 공간을 조이면, 이쿠라의 보컬이 그 공간을 환기시킵니다. 한국 힙합 특유의 밀도와 일본 팝의 서정성이 충돌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일본 교환학생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요아소비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 힙합도 이런 식으로 세련됐어"라며 지코를 소개했었는데, 만약 그 친구가 지금 이 듀엣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집니다.
이번 협업에서 두 사람은 언어의 경계도 허물었습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한 곡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입니다. 지코는 올해 6월 m-flo와 함께한 "EKO EKO"에서도 다국어 믹스를 시도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더 유기적입니다. 리라스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지코가 추상적으로 전달한 콘셉트를 일본어 가사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곡의 감도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뮤직비디오를 보면 "いち に 셋 넷"이라는 카운트가 나오는데, 이 한 줄만으로도 두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음악적으로 봤을 때 이 조합은 위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코의 음악은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이쿠라의 보컬은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DUET"은 그 둘 사이의 여백을 잘 계산했습니다. 곡 전반부에서는 지코가 리듬을 주도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이쿠라의 멜로디가 공간을 장악합니다. 이 과정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색을 주장하기보다 곡 전체의 균형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음악적 시너지를 만든 구조
"DUET"의 프로듀싱을 보면 지코의 영리함이 돋보입니다. 그는 "SPOT!"에서 제니와 작업할 때도 그랬지만, 협업 대상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곡을 설계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곡의 전체 구조는 지코가 잡았지만, 이쿠라가 들어갈 공간은 처음부터 넓게 열어뒀습니다. 리라스가 인터뷰에서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이쿠타 리라의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었다"고 말한 건, 지코가 그녀를 단순히 피처링 게스트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로 대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밤 드라이브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한강변을 달리면서 창문을 조금 내리고 들어보니, 한국과 일본의 감성이 섞인 공기가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곡의 템포가 빠르지 않고, 비트가 과하게 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지코는 자신의 스타일을 조금 누르고, 이쿠라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도록 믹스를 조정했습니다.
뮤직비디오도 흥미롭습니다. 도쿄 시부야의 교차로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것처럼 연출됩니다. 이쿠라가 인터뷰에서 "댄스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표현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는데, 영상에서 그녀는 지코와 함께 안무를 추면서도 자신만의 동선을 유지합니다. 이게 곡의 주제와도 연결됩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음악을 통해 연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리라스는 원래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곡을 직접 쓰고 프로듀싱하는 아티스트입니다. 2023년 발매한 첫 앨범 "Sketch"는 15살부터 쌓아온 그녀의 음악적 정체성을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만든 트랙에 자신을 맞추는 작업을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인터뷰를 보면 그녀는 이 과정을 "자신을 프로듀싱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음악을 만들 때는 내부에서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틀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한 것입니다.
지코 입장에서는 이쿠라의 통찰력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곡 자체를 관망하는 통찰력이 굉장히 넓다"며, 추상적으로 전달한 내용을 디테일한 표현으로 구체화해줬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일본어 가사를 보면, 단순히 한국어를 번역한 게 아니라 일본어만의 뉘앙스를 살린 표현이 많습니다.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건, 두 사람이 서로의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의미와 앞으로의 가능성
이 협업은 음악적 완성도 외에도 문화적 상징성이 큽니다. K-hiphop과 J-pop은 뿌리부터 다릅니다. 한국 힙합은 90년대 후반부터 미국 힙합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색을 만들어왔고, 일본 팝은 J-rock와 시티팝의 전통 위에서 독특한 서정성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이 둘이 만나면 보통은 어느 한쪽이 주도권을 잡거나, 아니면 어중간하게 섞여버립니다. 하지만 "DUET"은 그 둘을 병렬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저는 이게 요즘 세대의 감각이라고 봅니다. 국경이 예전만큼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세대에게, 지코의 랩과 이쿠라의 보컬은 그냥 '좋은 조합'일 뿐입니다. 굳이 '한일 협업'이라는 틀로 소비하지 않아도, 음악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곡입니다. 실제로 뮤직비디오 댓글을 보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리스너들도 이 곡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지코는 그동안 다양한 협업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범위를 확장해왔습니다. 블락비로 데뷔해 '자체 프로듀싱 아이돌'의 선례를 만들었고, 솔로로 전향한 뒤에는 힙합과 K-팝의 경계를 허물면서 챌린지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KOZ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BOYNEXTDOOR를 프로듀싱하면서 다음 세대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일본 아티스트와 협업한 건, 단순히 시장 확장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호기심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리라스 역시 2025년 5월 첫 한국 단독 공연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한국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 건 드문 일입니다. 요아소비의 멤버로서가 아니라, 이쿠타 리라라는 이름으로 한국 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이번 협업은 그 전초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그 분들의 일상에도 제 음악이 존재한다면 행복한 일"이라고 말한 건, 음악을 통한 문화적 교류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한편 지코는 2025년 2월 도쿄에서 8년 만의 단독 콘서트를 엽니다. 그는 "8년 동안 축적된 곡들을 최대한 밀도감 있게 전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번 "DUET"은 그 콘서트의 중요한 레퍼토리가 될 것입니다. 일본 팬들 입장에서는 자국 아티스트와 협업한 곡을 라이브로 듣는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일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10대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리라스는 고등학생 시절 10대 안에 데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쉽지 않았고, 지코는 10대 때부터 래퍼로 활동하다가 블락비로 데뷔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만든 "DUET"은, 단순히 유명 아티스트끼리의 만남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온 사람들의 존중과 이해가 담긴 결과물입니다.
이 협업이 성공했다면, 그건 두 사람이 서로의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색을 과하게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코의 영리함과 이쿠라의 청량함이 계산된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순간, 그게 가장 아름다운 지점입니다.
저는 이 곡을 들으면서, 음악이 언어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지코와 이쿠라가 만든 "DUET"은 단순한 협업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두 나라의 음악적 전통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는 증거이자, 앞으로 더 많은 한일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곡입니다. 이런 시도가 계속된다면, 국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음악에서는 점점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요즘 세대가 원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참고: https://www.billboard.co.kr/editorial/interview/article/du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