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몇 년 전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처음 소닉 유스를 제대로 들었습니다. 관람객이 없는 전시장에서 스피커 테스트용으로 틀어둔 노이즈 록이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웠고, 그 순간 저는 음악이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바꾸는 장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소닉 유스의 베이시스트 킴 고든이 2026년 3월 13일 새 앨범 Play Me를 발매하며, 선공개 싱글 Dirty Tech로 다시 한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이번 곡은 AI와 기술 산업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을 담고 있으며, 72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실험적인 언더그라운드 트랩 사운드를 고수하는 그녀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AI 시대를 향한 날선 시선
Dirty Tech는 킴 고든이 기술 억만장자들과 AI의 침투에 대해 품고 있던 불안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그녀는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 직장 상사가 AI 챗봇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며 "기술 억만장자들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먼저 몰락할 것"이라는 다소 섬뜩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이 곡은 단순한 기술 비판을 넘어서, 인간의 자리가 점차 기계로 대체되는 현실에 대한 냉소와 경고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가사를 들으면서 제가 독립영화 동호회에서 작업했던 단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킨 고든의 솔로 앨범 No Home Record에서 영감을 받아 거칠고 미니멀한 사운드를 배경음악으로 넣었는데, 친구들은 "이거 왜 이렇게 불친절해?"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불친절함이 좋았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태도. 바로 그것이 킴 고든이 수십 년간 지켜온 예술적 신념이었고, Dirty Tech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모니 하워스가 감독한 뮤직비디오는 텅 빈 사무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사무용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킴 고든은 그 공간 안에서 무표정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이 영상은 현대 사무 환경의 공허함과 기계화된 노동의 비인간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화려한 CG나 과장된 연출 없이, 그저 빈 공간과 사물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킴 고든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제가 일했던 그 미술관의 텅 빈 전시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트랩으로의 복귀
이번 싱글은 앨범의 첫 번째 공개곡이었던 Not Today와는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Not Today가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기반으로 했다면, Dirty Tech는 킴 고든이 최근 앨범들에서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언더그라운드 트랩과 익스페리멘탈 힙합 스타일로 돌아왔습니다. 72세의 나이에 트랩 비트를 기반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언입니다. 나이가 음악적 실험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 록이 반드시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몸소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킴 고든의 2024년 앨범 The Collective를 들으면서 이미 그녀가 레이지와 퐁크 같은 장르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70대에 접어든 뮤지션이 안전한 록 사운드 대신 실험적이고 공격적인 비트를 선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뮤지션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과거 스타일을 반복하거나 대중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과 달리, 킴 고든은 오히려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Dirty Tech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으며, 이는 그녀가 여전히 음악적 호기심과 실험 정신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언더그라운드 트랩이라는 장르 선택은 단순한 유행 추종이 아닙니다. 트랩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비트는 역설적으로 기술 사회의 냉정함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도구입니다. 킴 고든은 이 장르를 통해 AI와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의 리듬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건조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저항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소닉 유스 이후 킴 고든의 여정
킴 고든은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소닉 유스의 멤버로 활동하며 얼터너티브 록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그러나 남편이자 밴드 동료였던 서스턴 무어와의 이혼으로 밴드는 해체되었고, 이후 그녀는 Body/Head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2019년 첫 솔로 앨범 No Home Record는 피치포크에서 8.4점을 받으며 Best New Music에 선정되었고, 2024년의 The Collective 역시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 세 번째 솔로 앨범 Play Me를 앞두고 있는 킴 고든은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 모임에서 한 번 소닉 유스를 틀었다가 부모님께 "이게 노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20분 동안 노이즈 록의 미학을 설명했지만 설득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는 이상하게도 즐거웠습니다. 음악이 세대 차이를 드러내는 동시에, 대화를 시작하게 만드는 매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킴 고든의 음악은 바로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소비되지 않고,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 않지만, 그래서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듭니다.
킴 고든은 음악 외에도 시각 예술가이자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해왔습니다. 1993년에는 X-Girl이라는 패션 라인을 론칭했고, 2019년에는 앤디 워홀 박물관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단순히 음악인이라는 카테고리로 그녀를 설명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녀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해왔습니다. Dirty Tech 역시 그 과정의 일부입니다.
저는 킴 고든을 들으며 예술이란 결국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나이를 핑계 삼지 않으며,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해왔습니다. Dirty Tech에서 그녀가 던진 질문은 단순히 기술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인간이 먼저 몰락할 것이라는 그녀의 경고는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이것이 오히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킴 고든의 새 앨범 Play Me는 2026년 3월 13일 마타도르 레코드를 통해 발매됩니다. Dirty Tech는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저는 삶이 너무 안정적으로 흘러갈 때 일부러 그녀의 음악을 틉니다. 균열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72세의 킴 고든은 여전히 우리에게 그런 틈을 만들어주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 https://pitchfork.com/news/kim-gordon-resists-dirty-tech-in-new-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