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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지, 일본 최고의 베이시스트 (공격적 연주, 전성기, 탈퇴)

by oasis 2026. 3. 4.

엑스 재팬의 베이시스트 타이지

베이스가 정말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베이스를 '뒤에서 받쳐주는 악기'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타이지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베이스를 기타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하게 전면에 내세운 음악가였습니다. X JAPAN의 전성기를 함께 만든 타이지는 뛰어난 실력과 미적 감각을 겸비한 인물이었지만, 밴드를 떠난 후 그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베이스를 리드 악기로 끌어올린 타이지의 공격적 연주

타이지의 베이스 연주를 들으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공격성'입니다. 일반적으로 베이스는 드럼과 함께 리듬 섹션을 담당하며 곡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타이지는 그 틀을 깨버렸습니다. 저는 X JAPAN의 라이브 영상을 처음 봤을 때 이어폰을 빼고 스피커로 다시 틀었습니다. 저음이 방 전체를 울리는 느낌이 들었고, 기타가 화려하게 날아다니는 와중에도 베이스가 함께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안정시키는 게 아니라 함께 밀어붙이는 연주였습니다.

타이지는 슬랩, 러닝 베이스, 빠른 피킹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에너지를 유지했습니다. X JAPAN의 대표곡들을 들어보면 베이스 라인이 또렷하게 살아 있습니다. 특히 'Silent Jealousy' 같은 곡에서 타이지가 직접 작곡에 참여한 부분은 7분이 넘는 긴 곡임에도 불구하고 짜임새가 탄탄합니다. 그는 기타 출신이었기 때문에 기타와 베이스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 덕분에 두 악기가 경쟁하듯 어우러지는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음악을 들을 때 베이스를 일부러 더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멜로디 위주로만 들었는데, 타이지 덕분에 '아래'를 듣게 됐습니다. 리듬과 그루브, 공간을 채우는 저음의 힘. 타이지의 연주는 완벽하게 정제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뜨거웠습니다.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람처럼 보였고, 저는 그걸 보며 '음악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도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타이지는 X JAPAN 시절 건초염을 앓을 정도로 미친 듯이 연주했다고 합니다. 라우드니스에 합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기교를 뽐내기 위해 연주한 게 아니라, 곡을 더 강렬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을 소진했습니다. 비평적으로 보면 타이지는 일본 록 베이스 연주의 기준을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그는 화려한 외형 뒤에 숨지 않고, 사운드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X JAPAN 전성기에 기여한 편곡과 비주얼

타이지가 X JAPAN에 기여한 건 연주만이 아닙니다. 그는 요시키, 히데와 함께 밴드의 삼각 편대를 이루며 성공의 상당 부분을 책임졌습니다. 요시키는 작곡과 재정을 담당했고, 히데와 타이지는 편곡과 비주얼을 맡았습니다. 타이지는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요시키 곡에 록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요시키 멜로디에는 가요 느낌이 있었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뽕삘입니다. 하지만 그 뽕삘이 X JAPAN의 매력이기도 했고, 타이지의 공격적이고 타이트한 편곡이 더해지면서 개성 넘치는 메탈 사운드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Endless Rain'입니다. 원래 이 곡은 피아노만 있던 발라드였는데, 타이지가 록 발라드로 개조했습니다. 록 밴드인데 록이 없는 게 말이 되냐는 그의 고집 덕분에 지금 우리가 아는 'Endless Rain'이 탄생한 겁니다. 메이저 데뷔 앨범 <블루 블러드>와 2집 는 모두 타이지와 히데의 편곡을 거쳐 명곡이 탄생했습니다. 특히 앨범은 타이지의 바람대로 멤버들의 곡을 골고루 실었고, 타이지도 두 곡을 직접 작곡했습니다.

타이지의 패션 센스도 뛰어났습니다. 히데가 샤벨 타이거를 이끌고 미용 공부를 했던 만큼 센스가 출중했지만, 타이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히데가 타이지의 뾰족한 머리를 보고 "머리 멋있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타이지는 토시의 바짝 세운 스타일과 파타의 모히칸 스타일을 먼저 제안했고, 밴드의 의상도 직접 만들어 개성을 더했습니다. 저는 X JAPAN의 영상을 볼 때마다 그들의 비주얼이 단순히 화려한 것을 넘어서 정체성을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뒤에 타이지의 기여가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타이지는 X에서 멤버가 아닌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계약을 받게 됐고, 도쿄 돔 공연을 앞두고는 50km 밖으로 나가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결국 도쿄 돔 공연이 그의 마지막 X 공연이 됐고, 이후 X는 X JAPAN으로 이름을 바꾸며 타이지 대신 히스를 영입했습니다. 탈퇴의 공식적인 이유는 음악성 차이였지만, 타이지는 인세 문제를 비롯해 직언을 많이 한 탓에 요시키의 눈 밖에 났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요시키는 타이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타이지가 X를 떠난 후 밴드의 음악 색은 많이 바뀌었고, 타이지 본인의 인생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탈퇴 이후 방황과 비극적인 죽음

X를 나온 타이지에게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곳은 일본 메탈의 전설 라우드니스였습니다. 타이지는 무명 시절부터 라우드니스를 존경했고, 마침 라우드니스도 보컬과 베이시스트 탈퇴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타이지는 라우드니스의 베이시스트가 되어 극적인 합류에 성공했고, 1992년 앨범은 오리콘 차트 2위를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습니다. 타이지는 X에 있을 때보다 더 미친 듯이 베이스를 쳐서 건초염을 앓을 정도로 연주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라우드니스 활동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계약 문제에 휘말려 활동 중단 상태가 되자 타이지는 자신의 밴드 D.T.R을 조직했지만, 사태가 빨리 해결되어 라우드니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D.T.R은 타이지가 간섭 없이 하고 싶은 음악을 다 했지만, 단 두 장의 앨범을 내고 사실상 해체되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타이지는 음악 장인이었지만, 음악 외적인 부분, 특히 리더로서의 역할에는 취약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는 나중에 "X, 라우드니스, D.T.R 시절에는 음악만 하던 사람이라서 뒤에서 하는 일에 재미를 몰랐다"고 고백했습니다. 인세가 쌓인 사실조차 몰랐다는 일화는 그의 이런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1996년 7월 아내와 이혼하며 모든 것을 잃은 타이지는 정보가 뚝 끊긴 채 방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돈도 가정도 없이 기타 하나만 들고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죽음만을 생각하던 절망적인 시기였습니다. 공원의 수도꼭지를 억지로 열어 물을 마시는 등 힘든 생활을 이어갔고, 모르는 남자에게 각목으로 맞아 치아와 턱을 다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찾아가 연을 끊어 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타이지가 바닥까지 떨어져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던 중, 1998년 5월 2일 히데가 사망하는 대사건이 터졌습니다. 죽고 싶었던 자신은 살아있는데 영혼의 파트너 히데가 허무하게 떠난 것을 보며 타이지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히데를 위해서라도 부활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히데의 장례식에서 만난 동료들은 타이지의 재기를 도왔습니다. 요시키는 치료비를 주며 턱과 치아부터 고치라고 권했고, 라우드니스 드러머 히구치 무네타카는 헌정 앨범 참여와 투어를 제안하며 현장 복귀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음주 문제로 간이 망가져 병원 신세를 지는 등 자기 관리에 실패한 부메랑이 돌아왔고, 이후 간질, 뇌졸중, 간 질환, 기면증, 신증후군 등 다양한 지병과 알코올 중독, 경계성 인격 장애,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까지 겹쳐 몸이 망가졌습니다. 그럼에도 타이지는 꾸준히 재활하고 자서전을 쓰며 활동 의지를 보였습니다. 2000년에 낸 자서전에는 '나는 반드시 부활하겠다'는 선언이 담겨 있었고, 당시 자서전과 사진집에 수록된 그의 곡은 모두 히데 추모곡이었습니다.

2010년, 재결합한 X JAPAN으로부터 닛산 스타디움 라이브 참여 제안을 받았습니다. 도쿄 돔을 뛰어넘는 최대 규모 콘서트에 타이지는 옛 친구들을 기대하며 긴장했고, 공연 이틀 전 참여를 발표하며 X를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라이브 자체는 히스와의 파트 분배나 리허설 부족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고, 타이지는 무대 뒤에서 조용히 연주했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보면서 구석에서 베이스를 치는 모습이 자신감의 결여처럼 보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관객들의 연호에 타이지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 감격적인 공연 1년도 지나지 않은 2011년 7월, 타이지는 사이판행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려 체포된 뒤, 스스로 목을 매 혼수 상태에 빠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체포 당시 '나를 체포하면 X JAPAN 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 것은 과거의 영광에 살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여 더욱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그의 죽음에는 의문이 많았고, 약혼자라는 사람은 수상한 매니지먼트와 관계자들의 빠른 사건 은폐 시도를 폭로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공식적인 사인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남아있습니다.

타이지는 평생 X에서의 업적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X JAPAN은 타이지를 다시 공식 멤버로 명기하고, X를 부를 때 항상 히데와 함께 타이지의 이름도 호명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땐 많이 어긋났지만, 세상을 떠난 뒤에라도 영원히 X의 일부로 남은 것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이지에게 X가 자랑이었듯이, X에게도 타이지는 큰 자랑이었으니까요.

저는 지금도 헤드폰으로 크게 틀어놓고 베이스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의 충격이 떠오릅니다. 베이스가 이렇게까지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해준 순간. 타이지는 제게 음악의 밑바닥을 다시 보게 만든 사람입니다. 그의 연주는 완벽하게 통제된 사운드라기보다, 폭발 직전의 긴장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더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비극적인 생애까지 포함해, 그는 한 시대의 열기와 불안을 함께 상징합니다. 저에게 타이지는 '베이스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 음악가입니다.


참고: https://youtu.be/cz6O8Vpda-4?si=HEcb7Sjy4OwROpr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