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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 스캇, 분노는 어떻게 무대가 되었나 (중산층, 레이지 아이콘, 상품화)

by oasis 2026. 2. 24.

트래비스 스캇의 공연에서 열광하는 관중들

 

저는 Travis Scott의 공연 영상을 처음 본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수만 명이 한꺼번에 점프하고, 조명이 번쩍이고, 베이스가 울리던 그 장면을 스피커로만 듣는데도 심장이 쿵쿵 뛰었습니다. 밤에 혼자 작업할 때 그의 음악을 틀어놓으면 집중이 이상하게 잘 되는데, 가사를 듣는다기보다 분위기에 잠기는 느낌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힙합은 메시지와 랩 스킬이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Travis Scott의 음악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분노'라는 감정이 결국 2021년 비극적인 페스티벌 사고로 이어지면서, 저는 음악과 공연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산층 출신이 선택한 반항

Travis Scott은 일반적으로 힙합 아티스트들이 겪는 극빈층 배경과는 다릅니다. 그는 중산층 지역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며 자랐고, 부모님은 그가 음악이 아닌 대학 진학 후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삶에 스트레스를 느꼈고, 자신의 꿈은 그보다 훨씬 컸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우울함을 느낀 그는 부모님을 속여 교재비로 받은 돈을 다른 도시로 가서 음악 기회를 잡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습니다. 안정된 미래를 포기하고 불확실한 꿈을 좇은 결정이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그는 T.I.에게서 연락을 받았고, 이어서 칸예 웨스트에게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칸예의 굿 뮤직 프로덕션 팀에 합류하면서 그는 'Cruel Summer'와 '이저스' 앨범 제작에 참여했고, 프로듀서로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T.I.는 그의 아티스트적 재능에 관심을 보여 그랜드허슬 레이블과 계약하고 믹스테이프를 발매하게 도왔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그의 선택이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만 보지 않습니다. 칸예와는 프로듀서로, T.I.와는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양쪽 역할을 모두 배운 것은 그가 나중에 큐레이터처럼 앨범을 완성하는 능력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더블엑셀 프레시맨에 선정되며 힙합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자신만의 사운드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믹스테이프 '아울 파라'와 '데이즈 비포 로데오'를 발매하며 그는 고향 휴스턴의 황량하고 건조한 느낌을 음악에 담아냈습니다. 일반적으로 힙합은 가사와 메시지가 중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의 음악은 가사보다 전체적인 사운드 조화, 무드, 에너지 구현에 집중했습니다. 랩보다 멜로디와 오토튠, 잔향 효과 사용에 집착한 그는 본인을 힙합으로 규정하지 않고 래퍼보다는 무드 세터, 즉 힙합을 이해하는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정규 데뷔 앨범 'Rodeo'는 강렬한 베이스와 신시사이저로 젊고 와일드하며 다이내믹한 앨범이었습니다. 화려한 게스트 명단으로 그의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이 그의 진짜 능력이라고 봅니다.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여러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를 총동원하여 원하는 사운드를 완성하는 큐레이터 역할이야말로 그만의 강점이었습니다.

레이지 아이콘의 탄생과 과격한 공연

'Rodeo' 발매 이후 Travis Scott은 무표정에서 벗어나 분노의 감정인 '레이지'를 공연 아이덴티티로 삼았습니다. 그는 인간 불꽃 같은 존재가 되었고, 총소리, 비명, 불꽃, 과격한 관객 유도 등 모든 무대장치가 관객을 흥분시키는 데 맞춰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공연 영상을 볼 때마다 이것이 단순한 음악 공연이 아니라 일종의 집단 의식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의 공연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며, 청춘의 충동적이고 강렬한 에너지를 대변하는 '레이지 아이콘'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연은 음악을 듣는 장소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의 공연은 음악을 넘어 하나의 경험,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과격해지는 공연으로 인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7년에는 폭동 선동 혐의로 체포되었고, 관객을 뛰어내리게 한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규 2집에서는 초호화 게스트진을 활용하면서도 게스트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본인 사운드를 정립했습니다. 자신의 레이블 '캑터스 잭'을 설립하여 후배들을 돕는 꿈을 이루었고, 카일리 제너와의 만남으로 카다시안 가문에 합류하며 힙합을 듣지 않는 대중에게까지 존재를 알리게 되었습니다.

정규 3집 '아스트로월드'는 고향 휴스턴의 폐쇄된 놀이공원 '아스트로월드'의 다채로움을 음악으로 구현하고자 한 앨범이었습니다. 높아진 위치를 활용해 제임스 블레이크, 케빈 파커, 존 메이어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섭외했고,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수록곡 'Sicko Mode'는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며 메인스트림 최정상에 올랐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아스트로월드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그는 강렬한 에너지를 선보였습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그의 공연이 일개 공연을 넘어 한 세대의 혼란과 분노를 대변하는 도전 의식을 일으키는 경험이 되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분노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았을 때,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비극적 사고와 분노의 상품화 논란

2021년, 코로나 이후 개최된 아스트로월드 페스티벌에서 10명이 압살당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는 분노라는 감정을 사랑했고,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와 독특한 경험을 통해 하나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롤링스톤 에디터는 그의 공연이 '분노를 위한 분노'였을 뿐이며, 목적 없는 분노의 상품화가 비극을 초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의견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감정은 목적이 있어야 가치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Travis Scott이 일으킨 분노도 분명 가치가 있었습니다.

거창한 목적 없는 개인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분노가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의 음악을 들으며 도시에 혼자 서 있는 기분, 뭔가 거대한 시스템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고, 그것이 저에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였습니다.

사고 직후 책임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Travis Scott은 인이어 때문에 관객의 고통을 듣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죄송함을 표했습니다. 다른 래퍼들은 그보다는 기획사의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했으며, 그는 이후 모든 공식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이 비극으로 힙합 공연 문화에도 안전 의식 발전이 필요하며, 자극만큼 안전에도 신경 써야 할 때가 왔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히 한 아티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공연 산업 전체가 안전과 경험 사이의 균형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약 7개월 만에 그는 컴백하여 정규 4집 '유토피아'로 돌아올 것을 예고하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그가 이번 비극을 통해 자신의 '레이지'를 어떻게 재정의할지 궁금합니다. 분노는 여전히 강력한 감정이지만, 이제는 책임감 있게 다뤄져야 할 감정이기도 합니다.

Travis Scott의 이야기는 음악적 성공만큼이나 그가 만들어낸 문화와 그 문화가 초래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가 단순히 래퍼가 아니라 한 세대의 감정을 대변하는 아이콘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 감정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가 어떻게 변화할지, 그리고 우리가 공연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킬지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을 안전하게 표현하고 경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참고: https://youtu.be/E1DfW9dcq6s?si=S2yHKKLOlCY0SM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