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프랭크 오션, 공허함을 노래하는 예술가 (공백, 치유, 혁신)

by oasis 2026. 3. 30.

프랭크 오션의 명반 blond

프랭크 오션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멜로디가 명확하지 않아서 당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음악은 귀에 쏙 들어오는 후렴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곡들은 그런 기준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찾아 듣게 됐습니다.

파리 여행 중 숙소에서 혼자 이어폰을 끼고 "Nights"를 들었을 때, 그날 하루가 통째로 정리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느낀 고독이 그의 음악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프랭크 오션은 감정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감정 그 자체를 소리로 만드는 아티스트라는 것을요.

프랭크 오션이 만든 공백의 미학

일반적으로 알앤비는 관능적인 보컬과 강렬한 비트로 클럽을 겨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 오션은 정반대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많은 곡에서 비트가 없습니다. 심장을 뛰게 하는 추진력 대신, 몇 개의 소리와 보컬만으로 곡을 채웁니다.

2016년 발매된 정규 2집 '블론드'는 이런 특징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곡들은 멜로디도 뚜렷하지 않고, 전통적인 절-후렴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앨범을 다 듣고 나면 어떤 훅이나 멜로디가 기억나는 게 아니라, 막연한 잔상만 남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밤늦게 혼자 있을 때 이 앨범을 자주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절대 틀지 않았습니다. 이 음악은 혼자 있을 때만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텅 빈 것 같으면서도 뭔가 채워지는 느낌, 그 모순적인 감정이 저를 계속 이 앨범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프랭크는 데프 잼이라는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했지만, 4년 동안 방치당했습니다. 레이블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고, 계약만 해놓고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 그는 오드 퓨처라는 힙합 집단과 어울리며 DIY 정신을 배웠습니다. 레이블을 기다리지 말고 직접 만들어서 발매하라는 조언을 들었고, 그렇게 만든 것이 전설적인 데뷔 믹스테이프 '노스탤지아 울트라'입니다.

이 작품은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콜드플레이의 곡들을 무단으로 샘플링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저작권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SNS로만 조용히 발매할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믹스테이프는 발매와 동시에 현대 알앤비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록 밴드의 감성을 알앤비로 옮긴 대담한 시도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데뷔는 메이저 레이블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프랭크 오션은 그 반대였습니다. 레이블의 무관심이 오히려 그에게 완전한 자유를 줬고, 그 자유 속에서 그만의 색깔이 완성됐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치유

프랭크 오션의 음악을 들으면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그의 곡들은 고독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게 만듭니다. 이게 저에게는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2012년 발매된 데뷔 앨범 '채널 오렌지'는 프랭크의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앨범 발매 직전, 그는 자신의 SNS에 긴 글을 올렸습니다. 4년 전 여름에 만난 사람과의 이야기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이 된 이 글은 무지개 깃발 대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쓰였습니다. 어떤 성별을 사랑했는가보다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저는 이 앨범을 들으면서 사랑과 상실이 이성애자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프랭크가 그린 이루지 못한 사랑, 공허함, 외로움은 제가 느낀 감정과 정확히 같았습니다. 그는 특정한 사랑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채널 오렌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망가져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고, 그 공허함을 사랑 없는 섹스와 마약으로 채웁니다. 이런 주제는 지금 많은 힙합과 알앤비에서 다루고 있지만, 2012년 당시에는 매우 앞선 시도였습니다. 프랭크는 현대인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앤비는 사랑의 달콤함이나 이별의 슬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프랭크는 그 감정의 이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알앤비는 PBR&B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립니다. 힙스터들이 즐겨 마시던 맥주 이름에서 따온 이 장르명은, 그의 음악이 주류와 다른 청춘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대학 시절 밤늦게 과제를 하다가 막막할 때 이 앨범을 자주 들었습니다. 뭔가를 채워주기를 기대하고 틀었던 건 아닌데, 들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정리됐습니다. 그의 음악은 위로를 주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공백을 그대로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정을 해석하는 방식의 혁신

'블론드'는 모호함으로 가득한 앨범입니다. 앨범 제목부터 그렇습니다. 'Blonde'와 'Blond'는 프랑스어에서 각각 여성형과 남성형인데, 프랭크는 'e'가 있는 여성형을 선택했습니다. 젠더 플레이입니다.

앨범 속 곡들에서 프랭크는 어떤 곡에서는 남자와의 경험을, 어떤 곡에서는 여자와의 경험을 얘기합니다. 사랑과 상실이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보편적 감정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방식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프랭크는 또한 자아의 모호함을 드러냅니다. 앨범 내내 그는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안 되는 사랑을 붙잡으며, 쾌락으로 공허한 영혼을 달랩니다. 그러다 죽어가는 자신을 마주하고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합니다. 나약함과 살고자 하는 의지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Nights"라는 곡에서 이 모호함을 가장 강하게 느꼈습니다. 곡의 중간에서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됩니다. 단순한 구성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감정이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겁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감정이 변하는 그 순간을 소리로 담아냈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곡은 명확한 메시지와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프랭크 오션은 그 반대를 증명했습니다. 그의 곡들은 듣고 나서도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모호함이 청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줍니다. 각자의 경험과 감정으로 곡을 채울 수 있게 만듭니다.

프랭크는 2016년 '블론드' 발매 전 데프 잼을 벗어나기 위해 전략을 짰습니다. 계약상 두 장의 앨범을 내야 했기에, 먼저 비주얼 앨범 '엔드리스'를 데프 잼으로 발매해 계약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자신이 만든 독립 레이블로 '블론드'를 발매했습니다. 레이블의 간섭 없이 완전히 자유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2016년이라는 시대를 정확히 반영했습니다. 올랜도 게이 클럽 총기 난사 사건, 미국 내 갈등 심화, 트럼프 당선 가능성. 프랭크는 갈등이 폭력으로 변하는 시대에 모호함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뚜렷한 것들이 부딪힐 때, 오히려 경계를 흐리는 것이 해법일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프랭크 오션의 음악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해석의 과정 자체에 가깝습니다. 저에게 그의 음악은 혼자 있는 시간의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그래서 더 깊은 위로를 남깁니다.

프랭크 오션은 2016년 이후 정규 앨범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8년이 넘었습니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저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급하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다시 돌아올 때,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감정을 포착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이미 나온 그의 앨범들을 계속 듣겠습니다. 혼자 있는 밤, 이어폰을 끼고 프랭크 오션을 듣는 시간은 여전히 제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fBK_Bklj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