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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로, 솔직한 감정을 가사로 전달하는 시인 (대세행보, 국어국문과, 애증)

by oasis 2026. 4. 14.

요즘 대한민국 음악시장의 대세는 단연 한로로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한로로 음악을 들었을 때, "좋다"는 감정보다 먼저 든 생각이 "왜 이렇게 불편하게 솔직하지?"였거든요. 보통 음악은 감정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전달합니다.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편하게 다듬는 과정이 있죠. 그런데 한로로의 음악은 그 과정을 생략한 것 같습니다. 정리되기 전의 감정, 아직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를 그대로 꺼내 놓는 느낌이랄까요.

지난 10일 KBS 2TV '더 시즌즈-성시경의 고막남친'에 한로로가 출연했습니다. EP '자몽살구클럽' 수록곡 '0+0'으로 문을 열고, 새 싱글 '애증(LOVE&HATE)'의 타이틀곡 '게임 오버 ?'까지 선보였습니다. 방송 이후 여기저기서 반응이 갈렸는데, 저는 그 온도 차이 자체가 이 아티스트를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세행보

한로로가 '더 시즌즈'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전 시즌인 '더 시즌즈-지코의 아티스트'를 통해 지상파에 처음 얼굴을 알렸고, 이번 '성시경의 고막남친' 시즌에도 다시 함께했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에 두 번 초대받는다는 건, 단순히 음악이 좋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제작진이 이 아티스트의 무대를 다시 원했다는 뜻이니까요.

방송에서 화제가 된 장면 중 하나는 방탄소년단 RM이 '입춘'을 언급한 일에 감사를 전하며, 한로로가 직접 '봄날'을 자신의 방식으로 커버한 부분이었습니다. 원곡 팬들 사이에서는 "너무 조용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그 조용함이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한로로의 음색은 곡을 새로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화려하게 부르지 않으면서도, 가사의 무게를 아래로 내려앉히는 느낌이 있거든요.

'게임 오버 ?'의 뮤직비디오는 공개 이후 빠르게 조회수가 쌓였고, 공개 열흘도 되지 않아 조회수 216만 회를 넘겼습니다. '살인자ㅇ난감'과 '오징어 게임' 시즌 2, 3에 출연한 배우 노재원이 함께 등장한다는 점도 화제가 됐습니다. 출연진의 조합이 화제성을 높인 건 사실이지만, 저는 뮤직비디오 자체의 분위기가 곡의 메시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대세라는 단어가 과연 한로로에게 맞는 수식어냐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세'라고 하면 보통 모두가 좋아하는, 넓고 얕은 인기를 떠올리게 되는데, 한로로는 그 반대 방향에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팬층이 넓다기보다 깊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런 음악을 들었다면 아마 "너무 우울하다"고 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감정이 해소되는 음악이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이 음악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음악이 변한 게 아니라 제가 변한 거였습니다.

국어국문과 한로로의 감성보컬

한로로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시각이 확실히 갈립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보컬이라고 보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약간의 떨림이 있고, 어떤 음에서는 불안정함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 지점이 이 음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던 어느 비 오는 날이 생각납니다.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이어폰으로 한로로 음악을 틀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덜 혼자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위로를 받은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태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은 느낌이랄까요. 그 감각이 잊히지 않아서 지금도 한로로 음악은 특정한 시간에만 듣습니다. 아무 때나 틀지 않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피곤한 날에는 오히려 조심스럽습니다. 감정이 더 내려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정말 조용한 밤, 혼자 있을 때만 꺼내 듣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선보인 '0+0'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도 영원을 꿈꿀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 자체는 단순하지 않은데, 전달 방식은 담백합니다. 목소리가 감정을 크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감정이 있던 자리를 조용히 건드리는 식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게 밋밋하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계속 듣다 보면, 그 밋밋함이 의도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음악은 감정을 크게 만들기보다 이미 있는 감정을 깊게 파고드는 방식을 씁니다.

한로로의 음악이 대중적인 구조와 거리가 있다고 느끼는 분들의 말도 이해가 됩니다. 멜로디가 극적으로 바뀌지 않고, 전체적인 톤도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드라마틱한 전환이나 감정 해방의 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심심하다'는 평이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저도 친구들한테 이 음악을 추천했다가 "너무 우울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반대로 "이게 진짜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분명히 있었고요. 반응이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저는 후자에 가까운 쪽입니다.

새로운 싱글 '애증'으로 돌아오다.

새 싱글 '애증(LOVE&HATE)'은 타이틀곡 '게임 오버 ?'와 수록곡 '1111'로 구성돼 있습니다. '게임 오버 ?'는 미움과 싸우는 데 삶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고, '1111'은 그 반대편에서 사랑할 용기를 이야기합니다. 두 곡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지점에 닿아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

저는 이 싱글이 나왔을 때, 제목에서 먼저 뭔가를 느꼈습니다. '애증'이라는 단어는 흔히 사람 사이의 감정에 씁니다. 그런데 이 음악에서는 그 대상이 꼭 타인이 아닐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미움과 사랑, 그 사이에서 어디를 선택할 것이냐는 이야기처럼 들렸거든요. 물론 이건 저만의 해석일 수 있습니다. 같은 곡을 듣고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교토에서 혼자 걷던 저녁이 생각납니다.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묘하게 고립된 느낌이 드는 그 순간에 한로로 음악을 들었는데, 주변 풍경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보통 음악은 그런 외로움을 옅게 만들어주는데, 이 음악은 반대로 그 감각을 더 선명하게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외로움이 또렷해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그 감각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덜 고립된 것처럼 느껴졌달까요.

'게임 오버 ?'라는 곡 제목은 의문부호로 끝납니다. 단정 짓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미움과의 싸움이 끝난 건지 아닌지,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저는 그 불확실함이 이 음악을 더 사실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감정의 싸움이 깔끔하게 끝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어떤 분들은 결론 없는 음악이 불만족스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피곤한 날에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밤에 이 곡을 틀면, 그 열린 결말이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내 감정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어도 괜찮다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더 시즌즈'에서의 한로로는 무대를 꾸미는 쪽보다 전달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화려한 퍼포먼스나 극적인 감정 표현 없이, 곡의 온도를 그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 아티스트의 일관성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 음반에서도, 무대에서도, 인터뷰에서도 같은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이요. 그게 한로로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계속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한로로가 '치유형 아티스트'냐 아니냐를 두고는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저는 치유보다는 '직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음악이요. 그 인정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정확히 필요했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이 음악의 온도가 달라질 거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 한로로의 음악은 특별한 날을 장식하는 곡이 아닙니다.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던 감정들을 붙잡아주는 기록 같은 존재입니다. '더 시즌즈' 무대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다시 한번 확인됐습니다.

이 음악이 궁금하신 분들께는 '게임 오버 ?'보다 '입춘'이나 '0+0'을 먼저 들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타이틀곡으로 시작하면 이 아티스트의 결을 놓치기 쉬울 수 있거든요. 조용한 밤에, 이어폰으로, 가사를 보면서 듣는 걸 권합니다. 그 방식이 이 음악과 가장 잘 맞는 온도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broadcast/2026/04/11/MNSGMMZZHEYGEOBSMRSGIYTF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