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한 영상을 틀어주셨던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교실은 평소처럼 시끄러웠고 누군가는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래가 시작되고 고음 파트가 나오자 교실이 완전히 조용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목소리 하나가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휘트니 휴스턴이었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은 1980년대 팝계를 완전히 뒤흔든 흑인 여성 가수입니다. 그녀는 인종과 성별이라는 두 가지 장벽을 동시에 깨뜨리며 팝 역사에 새로운 기준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가족 간의 갈등, 약물 중독, 그리고 파멸적인 결혼 생활이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한 시대를 대표하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를 처음 제대로 들었을 때 저는 단순히 잘 부르는 것과 압도하는 것의 차이를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보컬은 기술적으로 완벽하면서도 감정적으로 강렬했습니다.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그녀의 노래를 부르려다 실패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우리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노래는 노래방에서 부르라고 만든 게 아닌 것 같다."
휘트니는 1963년 뉴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시시 휴스턴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백보컬을 했던 전문 가수였습니다. 가수 집안에서 자란 덕분에 휘트니는 어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배웠고, 그 재능이 유독 빛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에게 투영하며 엄격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아리스타 레코드의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클라이브는 휘트니가 노래할 때마다 척추가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흑인의 소울을 팝에 이식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휘트니를 그 중심에 세웠습니다.
1985년 데뷔 앨범은 처음에는 큰 파급력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이너마이트가 됐습니다. 세 개의 싱글이 연속으로 빌보드 1위를 차지했고,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댄스 팝에서도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 앨범은 여성 가수 데뷔 음반 최대 판매 기록을 세웠고, 연말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저는 이 기록을 보며 당시 그녀가 얼마나 센세이션을 일으켰을지 상상해봤습니다.
2집은 더욱 상업적인 팝 앨범이었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깝다고 평했지만, 대중 가수는 많이 팔리면 성공입니다. 이 앨범도 2천만 장 이상 판매되며 네 개의 싱글이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휘트니는 총 일곱 곡 연속 싱글 차트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성공은 흑인 커뮤니티의 반발을 샀습니다. 그들에게 휘트니는 백인 취향에 영합한 '화이트니 휴스턴'이었습니다.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에서 야유를 받았을 때 휘트니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성공이 항상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1991년 슈퍼볼 국가 제창은 휘트니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사건이었습니다. 미국 국가는 어렵기로 유명한데, 그녀는 편곡된 버전을 원테이크로 소화해냈습니다. 외국인인 저도 그 버전이 훨씬 대중 친화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공연은 아직까지도 미국 역사에 남을 명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약물 중독
대학교 시절 뉴스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친구들과 "한 시대를 대표하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말을 나눴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약물 중독에 따른 익사였습니다. 그 비극의 시작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휘트니의 약물 중독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오빠들이 하는 약물에 관심을 가진 그녀는 생일날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그녀의 몰락의 시작이었다고 말하는데, 저는 어린 나이에 그런 환경에 노출됐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휘트니의 가족은 성공 이후 모두 그녀의 회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것은 겉으로 보면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가 문제를 일으켜도 함부로 자를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가족 중에는 약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휘트니는 힘들 때 너무나 쉽게 약물을 찾게 됐습니다.
1992년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은 휘트니에게 최고의 행운과 불행을 동시에 가져다준 사건이었습니다. 같은 해에 영화 보디가드로 인생 최고의 성공을 거뒀지만, 바비와의 관계는 그녀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뜨렸습니다. 바비는 휘트니를 말릴 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오히려 함께 술과 약물에 빠져들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휘트니가 이미지 세탁을 위해 바비와 결혼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친구 로빈 크로포드와의 동성애 루머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 휘트니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받은 상처 때문에 자신은 꼭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고 하니까요.
1999년부터 휘트니는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투어 공연이 취소되고, 겨우 진행된 공연에서도 상한 목소리를 보여줬습니다. 2001년 마이클 잭슨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빼빼 마른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나중에 찾아봤는데, 한때 완벽했던 목소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언론은 휘트니를 가차 없이 공격했습니다. "크랙은 쓰레기"라는 그녀의 인터뷰는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타블로이드가 흑인 아티스트들에게 특히 가혹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지 마이클, 프레디 머큐리, 마이클 잭슨 모두 비슷한 시련을 겪었으니까요.
2002년 앨범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녀는 녹음을 자기 맘대로 엎어버렸고, 스튜디오에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세운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바비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며, 그녀의 삶은 점점 무너져갔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 보디가드
영화 보디가드는 휘트니 휴스턴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솔직히 영화 자체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멋있었던 것 말고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OST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보디가드의 시나리오는 1975년에 처음 완성됐습니다. 원래는 다이아나 로스가 여주인공으로 낙점됐지만 그녀가 거절하면서 무산됐습니다. 이후 각본가 로렌스 캐스단은 케빈 코스트너를 만나 다시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케빈은 휘트니를 여주인공으로 점찍었습니다.
휘트니는 2년간 고민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역할부터 시작하고 싶었지만, 케빈은 "제가 함께 있어 줄게요. 저는 결코 누군가가 실패하게 놔두지 않습니다"라고 설득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휘트니는 출연을 결정했고, 제작진은 그녀에게 삽입곡 자율권까지 보장했습니다.
영화 속 OST 중 'Queen of the Night'는 휘트니가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첫 곡입니다. 베이비페이스와 LA 리드가 함께 만들었는데, 휘트니는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을 원했습니다. 이 곡은 밤의 여왕 레이첼 마론의 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에 사용됐습니다.
'I'm Every Woman'도 휘트니가 직접 요청한 곡입니다.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이 곡을 통해 모든 종류의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했습니다. 프로듀서 나라다 마이클 월든은 휘트니가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한 것이 처음이라고 회상했습니다. 보통은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모든 것을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디가드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I Will Always Love You'입니다. 원래 제작진은 다른 곡을 쓰려고 했지만, 케빈 코스트너가 돌리 파튼의 이 곡을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컨트리 곡이라 휘트니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다시 들어보니 뭔가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다고 합니다.
케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시작을 무반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휘트니는 그 우려를 단번에 날려버렸습니다. 무반주로 시작하는 첫 42초는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곡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노래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전달이라는 걸 느낍니다.
이 곡을 녹음할 때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 옆에는 휘트니의 어머니 시시가 있었습니다. 시시는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이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지금 두 눈으로 위대함을 목격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디가드 OST는 4,500만 장이 팔렸고, 여섯 곡 중 다섯 곡이 휘트니가 부른 노래였습니다. 이 앨범은 휘트니의 두 번째 연말 앨범 차트 1위를 가져다줬고, 그래미에서도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I Will Always Love You'는 원곡자 돌리 파튼에게 1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고, 돌리는 그 돈을 흑인 거주 지역에 투자했습니다.
케빈 코스트너는 휘트니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맡았습니다. "하늘에선 천사들이 당신의 보디가드가 되어 줄 것"이라는 그의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나중에 영상으로 봤는데, 케빈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은 2012년 2월 11일 욕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약물 중독에 따른 익사였습니다. 3년 뒤에는 그녀의 딸도 똑같은 방식으로 혼수 상태에 빠졌고, 반년 뒤 사망했습니다.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휘트니의 이야기는 결국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가끔 밤늦게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듣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목소리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가수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성공과 실패, 영광과 고통이 뒤섞인 롤러코스터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O95hFS1KDC0?si=Zfjs0sOZiVGyjSr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