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근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불도 안 켜고 소파에 그냥 누워버리는 밤이 있습니다. 그런 날 우연히 유튜브가 추천해준 곡 하나가 귀를 붙잡았습니다. 휴먼 리그의 'Don't You Want Me'였습니다. 처음엔 80년대 특유의 촌스러운 패션에 웃음이 나왔지만, 차가운 신시사이저 비트가 반복될수록 이상하게 그 소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과 어두운 방, 그리고 기계적인 전자음.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휴먼 리그를 들으며 '도시의 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과거가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이었고,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세련되면서도 어딘가 쓸쓸했습니다.
클럽에서 즉석 캐스팅된 10대 멤버들, 휴먼 리그가 되다.
1980년 10월, 필립 오키는 밴드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대규모 유럽 투어가 코앞인데 핵심 멤버 두 명이 갑자기 팀을 나간 겁니다. 마틴 웨어와 이안 크레이그 마시라는, 밴드의 음악을 실질적으로 만들던 창단 멤버들이었습니다. 남은 건 보컬인 필립과 비주얼 담당 에이드리언 라이트뿐이었습니다.
공연 프로모터는 투어 취소 시 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필립에게 필요한 건 당장 무대에 세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클럽에 가서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무대를 돋보이게 할 여성 멤버를 찾아 셰필드 다운타운을 헤매던 그는 크레이지 데이지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던 두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수잔 앤서니와 조앤 캐더럴. 당시 아직 10대였던 이들은 즉석에서 섭외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던 겁니다. 특히 수잔의 아버지는 필립의 파격적인 외모를 보고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필립은 그날 정장 차림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채 수잔의 집을 찾았다고 합니다. 수잔의 아버지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할머니가 나섰습니다. "지금 기회를 주지 않으면 이 아이는 당신을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 말에 아버지는 마침내 문을 열었고, 셋이 함께 조앤의 부모를 설득하러 나섰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당시 필립이 느꼈을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무대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말입니다.
이렇게 급조된 멤버들과 함께 투어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표를 사고 들어간 사람들은 마틴과 이안을 보러 온 것인데, 무대 위엔 필립과 춤추는 여자 둘뿐이었으니까요. 언론은 "필립 오키와 댄싱 걸"이라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이 극적인 만남이 이후 빌보드 1위를 두 번이나 기록한 '휴먼 리그 2기'의 시작이었다는 걸 당시 아무도 몰랐습니다.
신시사이저로 만든 새로운 청사진
휴먼 리그의 시작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셰필드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마틴 웨어와 이안 크레이g 마시가 '더 퓨처'라는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글램록과 모타운 소울,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뒤섞은 아방가르드 전자음악이었습니다. 70년대 중반 신디사이저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들은 처음으로 전자악기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마틴이 첫 월급으로 산 코르그 700s는 그들 음악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음반사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보컬도 없고, 기타 베이스 드럼도 없이 신디사이저만 있는 밴드라니. 결국 마틴은 보컬을 섭외하기로 했습니다. 동창생인 필립 오키를 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서 있기만 해도 팝스타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필립은 노래를 불러본 적도 없었고, 색소폰을 사서 몇 번 불어보다 방구석에 던져둔 게 유일한 음악 활동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필립을 단순히 '비주얼 담당'으로 여긴 마틴과 이안의 시선이, 결국 밴드 내부 균열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겁니다. 창작자들 사이에서 역할 분담은 항상 민감한 문제입니다. 누가 음악을 만들고, 누가 얼굴이 되는가. 이 질문은 결국 휴먼 리그를 두 번 쪼개놓았습니다.
1978년 SF 보드게임에서 이름을 따온 '더 휴먼 리그'는 인디 레이블을 통해 데뷔했습니다. 1979년 발매한 미니 앨범 '더 디그니티 오브 레이버'는 전곡이 연주곡이었고 차트에도 들지 못했지만, 메이저 레이블의 눈에 띄었습니다. 버진 레코드와 계약했지만, 음반사는 곧 약속을 뒤집고 상업적 음악을 요구했습니다. 선급금을 받은 밴드는 거절할 수 없었고, '더 맨'이라는 이름으로 타협작을 냈습니다. 이 곡이 차트 진입에 실패하자 음반사는 다시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지만, 데뷔 앨범 '리프로덕션'도 처참했습니다.
1979년 게리 뉴먼이 'Cars'로 대박을 내자 '영국 전자음악의 파이오니어' 타이틀은 휴먼 리그에게서 넘어갔습니다. 펑크 밴드 언더톤스는 히트곡 가사에서 휴먼 리그를 조롱했습니다. 1년 만에 기대주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이 시기 마틴과 이안의 순수 일렉트로닉 고집과, 필립의 상업적 지향 사이 균열은 더 깊어졌습니다. 결국 1980년, 창단 멤버 두 명은 휴먼 리그를 떠나 '헤븐 17'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예술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창작자의 딜레마를 봅니다. 순수함을 지킬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 타협할 것인가.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필립 오키가 만든 빌보드 1위의 역설
급조된 휴먼 리그 2기는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필립은 프로 뮤지션인 이안 버든을 정식 영입하고, 수잔과 조앤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은 '더 사운드 오브 클라우드'가 영국 차트 12위에 올랐습니다. 이어 조 켈리스가 합류한 뒤 발표한 '러브 액션'은 3위, '오픈 유어 하트'는 6위를 기록했습니다. 1981년 10월, 세 번째 앨범 '데어'는 영국 차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휴먼 리그 2기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는 증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네 번째 싱글로 밀어붙인 곡은 정작 멤버들이 원하지 않던 것이었습니다. 'Don't You Want Me'는 필립이 "우리 음악과 가장 동떨어진 구색용 작품"이라며 강력히 반대한 곡이었습니다. 파산 직전이던 버진 레코드는 그의 반대를 무시했습니다. 1981년 겨울 발매된 이 곡은 발매 첫 주 9위, 다음 주 바로 1위로 직행했습니다. 1982년 7월에는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라 글로벌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예상치 못한 성공의 이면에는 뮤직비디오가 있었습니다. 1981년 개국한 MTV는 백인 록 뮤지션의 영상이 필요했지만, 당시엔 내보낼 만한 비디오가 부족했습니다. 'Don't You Want Me'의 화려한 영상미는 MTV의 집중적인 헤비 로테이션을 받았고, 이것이 미국 시장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뮤비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될 때, 이 곡은 35mm 필름을 사용해 영화 같은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뮤직비디오 내용이 가사와 전혀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가사는 남녀의 삼각관계인데, 영상은 스릴러 영화 촬영 현장을 보여줍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이 연출은, 가사와 무관한 독립적 서사로도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 비디오를 연출한 스티브 배런은 이후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만들었고, 영화 감독으로도 성공했습니다.
저는 이 역설이 흥미롭습니다. 필립 오키가 가장 싫어한 곡이 그의 커리어 최대 히트가 되었다는 것. 예술가의 의도와 대중의 선택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저 역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왜 이게 히트했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차가운 비트 위에 얹힌 무심한 보컬이 오히려 더 큰 감정의 여백을 만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성공 이후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싱글 '킵 필링 패스네이션'이 빌보드 8위를 기록했지만, 3년 만에 나온 네 번째 앨범 '히스테리아'는 저조했습니다. 앨범 제목은 녹음 당시 멤버들끼리 징글징글하게 싸웠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음반사는 돌파구로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라는 흑인 음악 프로덕션 콤비를 제안했습니다.
필립은 이들과의 협업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지미와 테리는 휴먼 리그가 작곡한 곡들을 퇴짜 놓고 자신들의 곡을 우선시했습니다. 멤버들은 녹음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외부 세션맨과 여성 코러스까지 투입되었습니다. 결국 필립은 앨범 완성을 그들에게 맡긴 채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로 에이드리언 라이트와 이안 버든이 팀을 떠났습니다.
휴먼 리그 멤버들 없이 완성된 다섯 번째 앨범 '크래시'가 발매되었고, 지미와 테리가 작곡한 'Human'이 빌보드 1위에 올랐습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1위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필립 오키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건 휴먼 리그의 앨범이 아니라 지미와 테리의 앨범"이라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앨범 커버 사진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보그지 사진작가와 포토 세션을 가졌는데, 사진작가가 수잔에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물구나무를 서라고 요구하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급하게 찍은 사진이 너무 보기 싫어 아예 포커스를 날려버린 채 앨범 커버로 사용했습니다.
두 번째 싱글 'I Need Your Loving'이 영국 차트 72위로 1981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휴먼 리그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습니다. '크래시' 앨범은 그들에게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휴먼 리그의 두 빌보드 1위 곡을 들으며, 이들이 정작 그 성공을 원하지 않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를 떠올립니다. 'Don't You Want Me'는 멤버들이 싫어한 곡이었고, 'Human'은 멤버들 없이 만들어진 곡이었습니다. 성공이 항상 기쁨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휴먼 리그는 몸소 보여줬습니다.
저에게 휴먼 리그는 80년대가 상상했던 미래의 사운드트랙입니다. 차가운 신시사이저 비트, 절제된 보컬, 반복되는 리듬. 그러나 그 차갑고 기계적인 소리 안에 인간의 감정이 은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밤 드라이브를 할 때마다 저는 휴먼 리그를 틉니다. 조금 미래적인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혹은 지금 제가 사는 시대를 한 발 떨어져 보고 싶을 때. 그들은 과거의 밴드인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저를 더 또렷하게 보게 만듭니다.
휴먼 리그는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룬 팀이었습니다.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도 전자음악의 미학을 대중에게 설득했습니다. 그들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내린 선택들의 결과였습니다. 클럽에서 즉석으로 캐스팅된 10대 멤버들, 음반사와의 끊임없는 충돌, 멤버 간의 갈등과 이별. 그 모든 고난이 결국 80년대 신스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들어도 휴먼 리그의 음악은 여전히 세련되고, 동시에 어딘가 쓸쓸합니다. 네온사인과 안개 낀 도시, 그 안을 걷는 외로운 사람들. 차가운 비트 위에 얹힌 따뜻한 감정. 저는 앞으로도 밤이 되면 그들의 음악을 들을 것 같습니다. 과거가 꿈꿨던 미래의 소리를, 지금 이 순간에 다시 듣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