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ABBA, 스웨덴에서 탄생한 세계적인 그룹 (유로비전, 비틀즈, 하모니)

by oasis 2026. 3. 9.

맘마미아의 부모님, ABBA

중학교 때 부모님 차를 타고 여행을 가면 아버지가 틀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바의 'Dancing Queen'이었는데, 솔직히 그때는 왜 이렇게 오래된 노래를 듣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술집에서 맘마미아 영화 OST가 나오자 모두가 따라 부르고 있더군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 노래는 세대를 넘어 살아남는구나. 아바는 제게 부모님 세대와 제 세대를 이어주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바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사랑받는 그룹이 되었을까요? 그 뒤에는 철저한 전략과 음악적 고민, 그리고 수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유로비전 우승으로 열린 세계 진출의 문

아바가 세계적인 그룹이 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명확했습니다. 바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이었죠. 당시 스웨덴 가수가 세계로 나가는 길은 사실상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유튜브도 없고, 영국 음악계는 비영어권 가수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비에른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우리가 스웨덴에서 왔다고 하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국제 우편으로 노래를 보내는 건 꿈도 희망도 없었다. 유일한 길은 유로비전뿐이었다."

사실 아바의 유로비전 도전은 한 번에 성공한 게 아니었습니다. 1972년 첫 도전에서 비에른, 베니, 그리고 매니저 스티그는 레나 안데르손이라는 가수의 출전 곡을 작곡해줬지만 스웨덴 예선에서 3위에 그쳤습니다. 이듬해에는 직접 나서기로 결심하고 'Ring Ring'이라는 곡으로 도전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바라는 그룹명도 없이 비에른, 베니, 아그네타, 애니프리드라는 긴 이름으로 출전했죠. 대중은 이 곡을 1등이라고 생각했지만 비평가들의 평가는 달랐고, 결국 또다시 3위에 머물렀습니다.

두 번의 실패 후에도 아바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74년, 세 번째 도전에서 드디어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심사 방식이 바뀌어 일반 청취자들이 투표하게 되었고, 아바는 'Waterloo'라는 곡으로 스웨덴 대표 자격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 전략이 정말 영리했다고 봅니다. 다른 경연 곡들과는 완전히 다른 멜로디, 눈에 확 띄는 의상으로 무장한 아바는 설령 1등을 못 하더라도 사람들 기억에는 남겠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결선 이전부터 전 유럽의 음반 발매 계약을 맺으며 스타덤을 준비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 위해 미리 준비한 거죠.

결선일, 아바는 전 유럽이 보는 앞에서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순간 아바의 이름은 전 유럽에 퍼졌고, 여운이 사라질 틈도 없이 아바의 앨범이 유럽 전역으로 쫙 퍼져나갔습니다. 유로비전 한 방으로 단숨에 월드스타가 된 겁니다. 일부 사람들은 아바의 성공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저는 이건 철저히 계산된 전략의 결과라고 봅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대중의 취향을 분석하고, 시스템의 변화를 읽어낸 결과였으니까요.

비틀즈에게 받은 영감과 작곡의 시작

아바의 음악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비틀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에른과 베니, 두 작곡가는 1963년 비틀즈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 때 결정적인 영감을 받았습니다. 비에른은 'She Loves You'를 처음 들었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지? 나도 우리만의 곡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원래 커버 곡만 연주하던 두 사람은 비틀즈 덕분에 작곡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겁니다.

흥미로운 건 당시 비에른과 베니가 속해 있던 밴드 멤버들은 그다지 야망이 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비에른의 밴드에는 작곡에 대한 열정을 가진 멤버가 없었고, 베니의 밴드인 헵스타 멤버들은 로큰롤이라는 장르와 지금을 뛰어넘는 명성에 대한 욕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1966년, 같은 공연장에서 공연한 뒤 한 파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함께 앉아 비틀즈 노래를 연주했습니다. 베니는 "우리 언젠가 작곡도 같이 해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말을 막연히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막연한 꿈이 3주 만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나 곡을 작곡했고, 서로의 호흡이 완벽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후 둘만의 작곡 듀오를 결성하게 되죠.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같은 음악적 비전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용기. 많은 뮤지션들이 "언젠가 해봐야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뭅니다. 비에른과 베니는 달랐습니다.

폴라 뮤직의 대표 스티그 안데르손도 이 두 사람의 가능성을 일찍 알아봤습니다. 1968년쯤 스티그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장담했습니다. "너희들은 분명히 전 세계적으로 뜰 수 있는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아주 훌륭한 작곡가니까." 이후 비에른과 베니는 폴라 뮤직 소속으로 동요부터 재즈, 교회 음악, 우아한 팝까지 모든 종류의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바의 음악이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엄청난 음악적 경험과 고뇌가 동반되어 나온 결과물입니다. 'Dancing Queen'을 들어보면 단순한 디스코 팝이 아니라 멜로디와 코러스의 상승 구조가 청자를 감정적으로 고조시키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거의 완벽한 팝 구조라고 할 수 있죠.

ABBA의 네 명이 만든 완벽한 하모니, 작곡 듀오의 완성

비에른과 베니가 작곡 듀오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여자친구들을 백보컬로 참여시킨 게 훗날 아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그네타 펠트스코그와 애니프리드 링스타드, 두 여성 모두 스웨덴에서 이미 한가락 하던 가수였습니다. 아그네타는 17살의 나이에 싱어송라이터로 차트 1위를 찍었고, 프리다는 지금으로 치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 출신이었습니다. 결코 무명이 아니었던 거죠.

두 커플은 가수로서 촬영과 공연 등으로 자주 마주치면서 사랑을 키웠고, 음악적으로도 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그네타는 비에른, 베니와 함께 투어를 돌았고 나중에는 자신만의 투어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비에른과 베니의 부탁으로 백보컬을 소화한 결과물이 상당히 괜찮았고, 점차 넷의 작업 체계가 굳어지게 됩니다. 비에른은 아그네타와 프리다의 음역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마치 엄청난 음역대를 가진 한 가수와 작업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아바의 진짜 힘이 나왔다고 봅니다. 단순히 네 명이 모인 그룹이 아니라, 두 명의 뛰어난 작곡가와 두 명의 실력파 보컬리스트가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계산된 그룹이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 계산이 차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듣는 사람의 감정을 정확히 건드렸으니까요. 'The Winner Takes It All'을 들으면 팝송이 이렇게 슬플 수 있구나 싶습니다. 사랑의 패배를 다루는 가사에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멜로디가 결합되어 있죠. 이 대비가 아바 음악의 핵심입니다.

그룹명 아바는 멤버들의 이름 앞글자를 딴 것인데, 매니저 스티그가 "언제까지 너희 네 명 이름 다 쓰고 다닐 거냐"며 만든 이름입니다. 간단하지만 기억하기 쉽고, 전 세계 어디서나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이죠. 이것도 전략이었습니다. 비영어권 그룹이 세계로 나가려면 이름부터 쉬워야 했으니까요. 1974년 유로비전 우승 이후 아바는 본격적으로 영어 곡만 발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전 세계 어디서나 사랑받는 그룹이 되었습니다.

아바 이전의 스웨덴은 영국과 미국의 음악 트렌드를 따라가며 로컬라이징하는 데 그쳤습니다. 1960년대 스웨덴 록 음악은 오히려 영어 가사가 더 많았을 정도로 영국 음악의 영향이 컸죠. 비에른도 회상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나가도 전 세계적 스타가 되려면 결국 영국의 허락이 필요했다. 스웨덴에서 왔다고 하면 거들떠도 안 봤다." 하지만 아바는 그 벽을 뚫었고, 이후 수많은 비영어권 가수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아하도 아바처럼 월드스타가 되고 싶어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노래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바는 단순한 팝 그룹이 아니라 팝 음악 공학자에 가까웠습니다. 멜로디, 화성, 보컬 하모니, 프로덕션이 치밀하게 맞물려 있었고, 그 계산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친구들에게 아바 노래를 추천합니다. 특히 'The Winner Takes It All'을 권하죠. 그 노래를 들으면 왜 아바가 세대를 넘어 살아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가 들었던 노래를 제가 듣고, 언젠가 제 아이들도 들을 겁니다. 아바는 시간을 연결해주는 음악입니다.


참고: https://youtu.be/Czafhb7LC50?si=sg4tM_YNZICqZvf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