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 그룹이 데뷔 3년 만에 처음으로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 어떻게 들리십니까?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이제야 빛을 봤네"라거나 "오래 기다렸겠다"는 반응이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KISS OF LIFE라는 팀은, 처음 봤을 때부터 "기다리는 팀"처럼 보이지 않았거든요. 이미 도착해 있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엠카운트다운 1위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늦은 보상이 아니라, 당연한 수순처럼요.
엠카운트다운 1위가 말해주는 것
KISS OF LIFE(쥴리, 나띠, 벨, 하늘)가 신곡 'Who is she'로 엠카운트다운 정상에 올랐습니다. 데뷔 후 세 번째 음악방송 1위이고, 이번 앨범으로 처음 받아든 트로피입니다. 1위 발표 직후 멤버들이 눈물을 보였는데, 소감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저한테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3년 차 팀이 초심을 얘기한다는 건, 단순한 겸손의 수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팀이 걸어온 궤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오히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비슷한 방향을 유지해왔다는 게 느껴집니다. 화려하게 방향을 바꾸거나 트렌드를 좇아 급하게 색깔을 바꾼 흔적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이 팀을 처음 접한 게 'Shhh'라는 곡이었는데, 그때 느꼈던 첫인상이 "신인 같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데뷔 초반 그룹을 보면 어딘가 날이 서 있거나, 반대로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 KISS OF LIFE는 첫 인상부터 자기 페이스가 있었습니다. 서두르지 않는 태도랄까요.
1위 무대에서도 그 태도는 그대로였습니다. 이 팀은 핸드마이크를 잡고 격렬한 안무를 소화했는데, 라이브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요즘 많은 그룹들이 MR 비중을 높이거나 이어폰 마이크로 라이브 부담을 줄이는 방향을 선택하는 걸 생각하면, 이건 분명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이번 무대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K-POP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게 있습니다. 예전처럼 후렴의 중독성이나 비주얼 임팩트만 보지 않게 됐습니다. 그보다 "이 팀은 무대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 선택의 결이 일관될수록 팀에 대한 신뢰가 생기거든요. KISS OF LIFE는 그 점에서 꽤 일관된 팀입니다.
라이브와 퍼포먼스, 그 안에 있는 것
대학교 시절 축제에서 걸그룹 무대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게 하나 있는데, 퍼포먼스가 아무리 완성도 높아도 긴장이 보이는 순간 몰입이 끊긴다는 점이었습니다. 눈이 흔들린다거나, 미소가 조금 경직된다거나. 관객은 그걸 생각보다 빠르게 감지합니다.
KISS OF LIFE를 처음 무대 영상으로 봤을 때 그 긴장감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잘 훈련된 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이건 연습량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표현에 대한 확신,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상태. 그게 느껴지는 퍼포먼스와 그렇지 않은 퍼포먼스는 분명히 다릅니다.
멤버 각각의 개성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Natty의 경우 다른 활동 경험이 있다 보니 무대에서의 안정감이 더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그게 팀 전체의 균형을 깨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팀 전체의 무대 밀도를 높이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캐릭터가 충돌 없이 맞물리는 팀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Who is she' 무대가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 팀이 보여주는 에너지가 "억지로 강해 보이려는" 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요즘 많은 걸그룹이 강렬함을 연출하기 위해 굉장히 공격적인 방향성을 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때로는 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KISS OF LIFE는 그보다는 여유에서 나오는 강함입니다.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그냥 원래 이런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이게 더 오래 갑니다.
음악적으로도 같은 맥락이 있습니다. R&B 기반 사운드에 비교적 절제된 편곡, 그리고 퍼포먼스 중심의 구성. 과하게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무대에서 꽤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듣기 편한데 기억에 남는 곡을 만드는 것,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트렌디하다고 해서 오래 남는 건 아니고, 퀄리티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귀에 걸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자기확신에서 출발하는 KISS OF LIFE 의 다음 과제
저는 도쿄에서 밤에 거리를 걷다가 KISS OF LIFE 음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곡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흐릿한데, 그때 느꼈던 건 "이 음악이 여기 공간이랑 어울린다"는 감각이었습니다. K-POP 특유의 과잉된 에너지가 아니라, 도시의 밤 거리와 자연스럽게 같이 흘러가는 느낌. 요즘 K-POP이 글로벌 감각을 반영한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KISS OF LIFE는 그 도시적인 감각이 인위적으로 입혀진 게 아니라 음악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솔직하게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 팀이 잘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Sticky', 'Get Loud', 그리고 'Who is she'까지 세 곡의 음악방송 1위 이력은 그 자체로 충분한 근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팀이 아직 "완전히 독보적인 색깔"을 완성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걸 비판이라기보다 관찰에 가깝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KISS OF LIFE는 현재 장르적으로 잘 정착된 노선을 잘 소화하는 팀입니다. R&B 기반 걸그룹이라는 포지셔닝도 있고, 무대 위 태도도 확고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이건 KISS OF LIFE만 할 수 있다"는 지점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친구들이랑 이 팀 얘기를 하면 반응이 흥미롭게 갈립니다. "요즘 걸그룹 중 제일 낫다"는 사람도 있고, "더 지켜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 두 가지가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잘한다는 것과, 앞으로 어떤 팀이 될 것인가는 다른 질문이거든요.
이미 완성도가 높은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건 분명한 강점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처음부터 완성도가 높았던 팀일수록 이후의 변화가 더 어렵기도 합니다. "잘 만들어진 것"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더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 이게 직장 생활로 치면 초반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그 기준을 어떻게 갱신해나가는가의 문제와도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쉽지 않은 위치입니다.
그럼에도 이 팀이 기대되는 건, 지금까지의 선택들이 대체로 일관되고 그 방향이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확신에서 출발한 팀은 흔들릴 때도 돌아올 기준점이 있습니다. KISS OF LIFE가 그 기준점을 얼마나 단단하게 쌓아가느냐가, 앞으로 이 팀을 계속 볼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엠카운트다운 1위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뷔 3년 차 팀이 신보로 정상에 오른 건, 지금 이 시점에서 팀의 방향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니까요.
다만 저는 이 트로피보다, 1위 이후 이 팀이 어떤 선택을 해나갈지가 더 궁금합니다. 잘 만들어진 팀이 어디까지 자기 것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KISS OF LIFE의 음악을 처음 들을 때부터 머릿속에 걸려 있던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Who is she'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무대 영상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음원만으로는 이 팀의 절반도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