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컴퓨터실에서 친구가 이어폰을 건네며 "이거 진짜 미쳤다"고 했을 때, 저는 음악이 아니라 기계가 고장 난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 첫 스크릴렉스 경험이었습니다. 2010년, 소니 존 무어라는 이름의 청년이 스크릴렉스라는 예명으로 세상에 던진 덥스텝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EDM 씬을 완전히 뒤집어놓았고, 10년 가까이 조용히 지내다 2023년 더블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염을 기른 성숙한 모습으로 말이죠.
2010년 EDM 씬을 뒤흔든 음악적 충격
스크릴렉스가 등장하기 전 200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백인층에게는 마땅히 빠질 만한 음악이 없었습니다. 팝은 시시했고 록은 저물어가던 시기였습니다. 힙합은 아직 익숙지 않았죠. 아이러니하게도 하우스 음악은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되었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탄생한 하우스와 테크노는 오히려 유럽으로 건너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유럽에서 다시 건너온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미국에서 'EDM'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주류 음악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각종 EDM 페스티벌의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 록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스타 DJ들이 탄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크리렉스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습니다.
본명이 소니 존 무어인 그의 어린 시절은 상당히 어두웠습니다. 14살 때 학교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해 홈스쿨링을 받았고, 16살에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부모가 원래 알던 사람이었다는 것도요. 그는 이 어두운 시절을 음악으로 버텼다고 회상합니다. 집을 나와 이모코어 밴드 '프롬 퍼스트 투 라스트'의 보컬로 활동하며 인디 신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무리한 보컬 활동으로 성대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2007년 밴드를 탈퇴한 그는 같은 해 다프트 펑크의 '얼라이브 투어 2007' 공연을 보고 인생을 바꿀 영감을 얻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에이펙스 트윈, 스퀘어 푸셔 같은 전자 음악을 들으며 관심을 키워왔던 그는 보컬을 포기하고 프로듀싱에 집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친구이자 드럼 앤 베이스 DJ였던 트래비스 플래닛의 집에 머물며 음악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트래비스가 들려준 영국 언더그라운드의 스텀프 음악을 듣고, 스크릴렉스는 이를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기로 합니다.
2010년 10월, 그는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라는 EP를 발매했습니다. 변칙적인 리듬에 뒤틀린 워블 베이스가 가득한,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사운드였습니다. 저는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음악이 갑자기 폭발하듯 변하고, 베이스는 기계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몇 번 듣다 보니 묘하게 중독되었지만요. 이 EP는 전 세계 음악 트렌드뿐만 아니라 인터넷 문화, 심지어 당시 떠오르던 K-POP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박 리듬에 춤만 추던 클럽 신에 헤드뱅잉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가져온 것이죠.
덥스텝을 재정의한 EDM 혁명
스크릴렉스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덥스텝이라는 장르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덥스텝은 자메이카의 레게에서 파생된 '더브' 음악과 '투스텝 개러지'의 '스텝'이 합쳐진 이름입니다. 더브는 기존 사운드를 지우고 새로운 사운드를 입히는 '더빙' 개념으로, 보컬과 멜로디를 지우고 리듬을 유독 강조합니다. 특히 베이스와 드럼의 특정 음역을 강조하고 딜레이, 리버브 같은 음향 기술로 공간감을 살린 것이 특징입니다.
이 음향적 실험은 자메이카를 오랫동안 식민 지배했던 영국으로 전파되어 정글, 드럼 앤 베이스, 투스텝 개러지 같은 UK 베이스 댄스 음악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투스텝 개러지는 하우스 음악의 규칙적인 리듬과 달리 변칙적인 브레이크 비트, 즉 킥이 불규칙하게 드러나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렇게 리듬과 베이스가 강조되는 더브의 영향, 무거운 베이스의 투스텝의 변칙적인 리듬,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투스텝 개러지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담아 덥스텝이라는 장르가 독립적으로 파생되었습니다.
초기 덥스텝은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실험적인 장르였습니다. 그런데 스크릴렉스가 나타나면서 이 장르를 완전히 재정의해버렸습니다. 차분한 UK 개러지 리듬에 반발하듯 헤비메탈 사운드를 연상케 하는 자극적인 글리치와 디스토션, 특히 워블 베이스를 중점적으로 사용하며 신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왔습니다. 워블 베이스 자체는 이전 덥스텝에도 있었지만, 스크릴렉스는 이를 더 강하게 살려 유독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실험적인 덥스텝에 대중적인 멜로디를 넣어 이 장르를 메인스트림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저는 대학교 축제 때 EDM DJ 공연을 보며 이 음악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운동장이 클럽처럼 변했고 사람들이 다 같이 뛰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이 음악은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이 아니라 몸으로 듣는 음악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기존 덥스텝 팬들은 스크릴렉스의 음악을 '브로스텝'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이 조롱적인 용어가 오히려 덥스텝의 파생 장르로 자리 잡기도 했죠.
기성세대에게 스크릴렉스의 덥스텝은 시끄러운 소음이었습니다. 심지어 음악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교란종'이라는 비판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크릴렉스는 자신의 음악이 과거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처럼 '이 시대의 새로운 로큰롤'이라며 당당히 선보였습니다.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는 그래미에서 '베스트 댄스 레코딩'과 '베스트 댄스/일렉트로니카 앨범' 부문을 수상하며 시대의 대세임을 입증했습니다.
스크릴렉스는 덥스텝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습니다. 2011년 네 번째 EP에서는 뭄바톤, 일렉트로 하우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습니다. 특히 보아의 노래를 샘플링한 곡은 한국 매체에서 BGM으로 쓰일 만큼 큰 히트를 쳤습니다. 2014년 첫 정규 앨범 'Recess'에서는 트랩, 투스텝, 드럼 앤 베이스, 글리치, 딥하우스 등을 시도하며 또 다른 자신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빅뱅의 지드래곤과 2NE1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K-POP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스크릴렉스는 수차례 내한했고, 포미닛과 샤이니 키의 곡을 프로듀싱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주목받았던 콜라보는 2013년 프로듀서 디플로와 함께 결성한 '잭 유'였습니다. 2015년 발매된 잭 유의 데뷔 앨범은 그래미 '베스트 일렉트릭 댄스'와 '베스트 댄스 레코딩' 부문을 수상하며 상업적,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저스틴 비버가 피처링한 싱글 'Where Are Ü Now'는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여러 매체에서 '2015년 올해의 트랙'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조용한 침묵 끝에 찾아온 스크릴렉스의 성숙한 복귀
2010년대 후반 코로나19로 페스티벌이 열리지 못하면서 덥스텝 음악의 열기는 사라졌고, 이 씬도 시들해졌습니다. 스크릴렉스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보컬로 활동했던 '프롬 퍼스트 투 라스트'에 잠시 복귀하기도 했고, 레이디 가가, 텐타시온, 우타다 히카루, 트래비스 스캇, 저스틴 비버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 곡을 프로듀싱하며 프로듀서에 집중했지만, 존재감은 예전만큼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지내던 스크릴렉스는 2023년 2월, 9년 만에 드디어 새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더블 앨범인 'Quest For Fire'와 'Don't Get Too Close'로 말이죠. 예전의 어리고 귀여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수염을 기른 성숙한 비주얼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201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여파로 의욕과 목적을 잃고 4~5년 동안 방황했으며, 몇 년간 마음고생 끝에 2023년이 되어서야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합니다.
두 앨범은 스크릴렉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덥스텝에 대해 완전한 작별을 고합니다. 'Quest For Fire'는 팝, 힙합, 월드 뮤직, 펑크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참여하여 댄스팝, 하우스, 덥스텝, 퓨처 베이스, 시카고 주크 등 여러 장르의 강렬한 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Don't Get Too Close'는 여러 래퍼들이 참여하며 이모, 팝 등의 요소를 담아 팝적인 사운드를 선보입니다.
9년 만의 정규 앨범이지만, 이 더블 앨범이 2010년대 스크릴렉스처럼 댄스 씬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음악 소비 방식도 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앨범은 여태까지 스크릴렉스가 쌓아 올린 음악적 깊이를 무시할 수 없는 성숙한 웰메이드 음악임이 분명합니다. 제가 헬스장에서 가끔 스크릴렉스 음악을 틀면 고등학교 시절 에너지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강렬했고, 한 시대를 대표했습니다.
스크릴렉스는 단순한 DJ가 아니라 '사운드 혁신가'였습니다. 그는 디지털 시대의 사운드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구현했고, EDM을 록 음악처럼 만들었습니다. 공연장은 클럽이 아니라 록 페스티벌처럼 변했고, 관객들은 헤드뱅잉을 했습니다. 전자음악이 가지던 차가운 이미지를 깨뜨린 것이죠. 겉모습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숙해진 스크릴렉스가 앞으로 또 어떤 음악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저는 여전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이 공격적이지만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된 리듬과 사운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