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겪어보니 힙합을 듣는 방식은 나이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중학생 때는 그저 비트가 좋고 멋있어 보이면 그만이었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앨범 하나를 듣더라도 그 앨범이 나온 시대적 배경과 아티스트의 스토리를 먼저 찾아보게 되더군요. Snoop Dogg를 처음 알게 된 건 친구가 휴대폰 스피커로 틀어준 Gin and Juice였습니다. 가사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 느긋한 분위기만큼은 확실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힙합 레전드라고 하면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Snoop Dogg는 오히려 여유롭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30년 넘게 살아남았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진짜 얼굴
90년대 초반 힙합씬을 지배한 건 웨스트코스트와 이스트코스트의 대립 구도였습니다. 그 중심에 Snoop Dogg가 있었죠. 1971년 캘리포니아 롱비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모가 만화 캐릭터 스누피를 닮았다며 붙여준 별명을 그대로 랩네임으로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힙합 아티스트들이 멋있는 이름을 고민해서 짓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긴 이름이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습니다.
롱비치는 갱단 활동으로 악명 높은 지역이었고, Snoop Dogg 역시 10대 시절 크립스라는 갱단에 들어가 마약 딜러로 활동하며 감옥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습니다. 이런 배경은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죠. 사촌인 Nate Dogg, 릴 하프 데드와 함께 투원쓰리라는 그룹을 결성해 데모를 녹음했는데, 이 믹스테이프가 Dr. Dre의 귀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Dr. Dre는 당시 슈그 나이트와 함께 데스 로우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막 설립한 상태였습니다. 인재를 찾던 그들은 Snoop Dogg를 바로 영입했고, The D.O.C.가 체계적으로 랩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저는 대학교 힙합 동아리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천재 래퍼도 결국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이 신선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천재는 타고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체계적인 훈련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1992년 영화 딥 커버의 주제곡에서 Dr. Dre와 함께 작업하며 공식 데뷔한 Snoop Dogg는 같은 해 Dr. Dre의 첫 솔로 앨범 The Chronic의 거의 모든 곡에 참여했습니다. 이 앨범은 지펑크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렸는데, 펑카델릭의 조지 클린턴에게 영향을 받은 사이키델릭한 펑크 사운드가 특징이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봤는데,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이 왜 그렇게 특별한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비트 하나하나가 여유롭고 그루브가 살아있더군요.
1993년 11월 발매된 데뷔 앨범 Doggystyle은 첫 주에만 80만 장을 팔며 빌보드 200 차트 1위로 데뷔한 최초의 데뷔 앨범이 되었습니다. Who Am I, Gin and Juice 같은 싱글은 빌보드 핫백 톱10에 들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죠. 하지만 갱스터 출신답게 1993년 녹음 중 라이벌 갱단 멤버의 죽음에 연루되어 1급 살인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도 겪었습니다. 다행히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사건으로 재판에 시간을 쏟다 보니 다음 앨범 준비가 늦어졌습니다.
Snoop Dogg 의 끊임없는 음악 스타일 변신
일반적으로 레전드 래퍼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Snoop Dogg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시대에 맞춰 계속 변신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투팍 사망 이후인 1996년 발매한 두 번째 앨범 The Doggfather는 Dr. Dre가 데스 로우를 떠난 상태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도그 파운드의 대즈 딜린저와 DJ 푸가 프로듀싱을 맡았지만 Doggystyle의 신선함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죠. 게다가 살인 혐의 재판 때문에 제대로 된 준비 시간을 갖지 못했고, 갱스터 이미지를 벗고 싶어 하면서 스타일도 서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200만 장 이상 팔렸지만 데뷔작에 비하면 아쉬웠던 앨범입니다.
슈그 나이트와의 불화로 데스 로우를 떠난 Snoop Dogg는 1998년 마스터 P의 노 리밋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랩네임도 Snoop Doggy Dogg에서 Snoop Dogg로 바꿨습니다. 웨스트코스트 출신이 뉴올리언스 중심의 사우스 스타일 레이블로 간다는 건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하지만 슈그 나이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 리밋에서 낸 세 장의 앨범은 전성기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Dr. Dre와 다시 손잡고 과거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면서 어느 정도 인기를 되찾았습니다.
2002년 노 리밋과의 계약이 끝난 후 넵튠스와 손잡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퍼렐 윌리엄스와 채드 휴고로 이루어진 넵튠스는 당시 팝씬에서 가장 핫한 프로듀서였거든요. 저도 2000년대 초반 라디오에서 나오는 곡 중 절반 이상이 넵튠스 프로듀싱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퍼렐과 함께한 Drop It Like It's Hot은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며 엄청난 히트를 쳤고, 지금도 클럽에서 자주 틀리는 곡입니다.
2004년에는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뿌리로 돌아가 워렌 G, 네이트 독과 함께 투원쓰리 이름으로 앨범을 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트레이 디, 골디 럭과는 더 이지 사이더즈로, 위즈 칼리파와도 콜라보 앨범을 냈죠. 피처링도 정말 다양합니다. Dr. Dre, 50 Cent, 에이콘 같은 힙합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케이티 페리, 푸시캣 돌즈, 심지어 BTS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협업했습니다.
2013년에는 랩네임을 Snoop Lion으로 바꾸고 레게 장르에 도전했습니다. 자메이카를 여행하면서 라스타파리 무브먼트에 감명받아 밥 말리, 그레고리 아이삭스 같은 레게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죠. 대마를 사랑하는 그에게 라스타파리 의식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메이저 레이저가 프로듀싱한 앨범 Reincarnated을 냈지만 반응은 별로였습니다. 같은 해 펑크 페르소나 Snoopzilla로는 밤 펑크와 콜라보한 7 Days of Funk 앨범을 내 좋은 평가를 받았고요.
2014년 퍼렐과 다시 손잡아 만든 Bush는 랩이 아닌 노래 중심의 가벼운 댄스 팝 앨범이었습니다. 2018년에는 심지어 가스펠 앨범 Snoop Dogg Presents Bible of Love까지 냈는데, 이건 본인이 직접 랩을 하기보다 여러 아티스트를 큐레이팅한 프로젝트였죠. 2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으로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더욱 넓혔습니다.
30년을 버틴 생존 전략
일반적으로 90년대 래퍼들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Snoop Dogg를 보면 생존 전략이 확실했습니다. 저는 그가 단순히 음악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2019년 가장 놀라운 소식은 데스 로우 레코드의 판권을 Snoop Dogg가 직접 사들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슈그 나이트가 2006년 파산하면서 경매에 올라온 판권이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 2022년 Snoop Dogg 손에 들어왔죠. 자신이 떠났던 레이블의 오너가 되어 19번째 앨범 B.O.D.R.을 데스 로우에서 냈습니다. 하지만 기존 앨범들을 스트리밍에서 내리고 NFT화 시킨다고 발표해 팬들에게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메타버스와 NFT에 대한 관심도 상당합니다. 2022년 한 해에만 The NFT Drop Volume 1과 Volume 2를 연달아 냈을 정도죠. 요즘 앨범 공장장이라 불릴 만큼 자주 앨범을 내는데, 솔직히 최근 앨범들은 차트 성적도 신통치 않고 평가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저는 유튜브에서 Snoop Dogg 인터뷰를 가끔 보는데, 그는 이제 음악보다 외부 활동에 더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대마초 사업, 배우, 게임, 스포츠 해설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죠. 한국에서도 싸이, 소녀시대, BTS와 콜라보했고 쇼미더머니 4에 심사위원으로 깜짝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레전드 래퍼는 음악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 경험상 대중문화 전반에서 존재감을 유지하는 게 더 효과적인 생존 전략인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건 Snoop Dogg가 그래미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30년 넘게 활동하고 수많은 히트곡을 냈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그는 상과 상관없이 힙합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리얼 OG 래퍼로서 후배들에게 리스펙을 받으며, 단순한 뮤지션을 넘어 하나의 캐릭터이자 브랜드가 되었죠.
Dr. Dre와 다시 손잡고 준비 중인 앨범 Missionary가 곧 나온다고 합니다. 영혼의 파트너와 함께하는 만큼 이번엔 제대로 된 명반이 나올 거라는 기대가 큽니다. 본연의 음악에 집중한 앨범 하나면 그의 커리어에 다시 한 번 의미 있는 지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noop Dogg는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하다는 말을 증명한 아티스트입니다. 트렌드에 맞춰 변신하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음악을 넘어 문화 전반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며 30년을 버텼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Snoop Dogg는 단순한 래퍼가 아니라 힙합 문화의 살아있는 역사처럼 느껴집니다.